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성실하게 살아온 40여 년의 인생!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한 후 한눈팔지 않고 경력을 쌓았다. 애초에 흙수저였고 재능도 별 볼일 없는 것을 알기에 성실함과 친절함을 무기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요인의 혼란스러움으로 극심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감당할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2022년 2월 학기말 , 학교라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도망치듯 이주했다.
학교를 나오니 "선생님"이라는 직함은 없어졌다. 17년 만에 직책이 없어진 삶이 꽤 낯설었다.
직함이 사라지니, 자존감이 바닥으로 서서히 떨어졌다. 자신감도 함께 증발해버렸다.
단지 소속감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으리라 구체적인 소속이 없어졌다고 내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딸, 남편의 친구 같은 아내, 그리고 두 아이 엄마라는 내 역할은 그대로였다. 없어진 소속감에 연연하며 나를 작게 만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나는 뭔가 연결되는 세계가 필요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하고, 어릴 적부터 숨겨왔던 열망의 하나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늘 쫓기던 삶에 여유와 느림이라는 아지트가 생겨났다. 항상 화가 내재되어 있고, 부정적인 말로 점철된 채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던 나의 모습이 서서히 변화되었다. 여유와 넉넉함이 장착되었다. 웃음과 스킨십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자주 보이자 두 아이와 마음거리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무던히도 어색했던 사이였다.
텃밭의 흙을 함께 일구고, 채소와 토마토를 수확하고, 반려견을 함께 산책시키고, 집 근처 바다에서 낚시를 한다. 풍성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속마음과 고민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아닌 그 과정을 먼저 겪은 인생선배로서 공감을 해주는 가운데 슬기롭게 이겨내고 있다.
'아 이게 행복이지!'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다.
가족이 함께 서로 부대끼며 나누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풍족한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를 배우고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소통하며 교감을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삶을 되돌아본 적 없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경주마처럼 하루하루 앞만 달리는 삶이었다.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깨닫기 위해 제주에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가까이하며 하나 된 가족의 진정한 숨결을 호흡한다.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방향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최적인 길을 설정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