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나샘 Jul 12. 2022

밤낚시를 즐기며 저녁이 있는 삶을 살다

긴 시간 엄마, 아빠의 빈자리 잘 견뎌준 아이들

"엄마,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어떤 점이 좋은데?"

"학교 갔다 오면 반갑게 맞아주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잖아요."

"그전에는 엄마 퇴근 전 배고파서 내가  혼자 밥 먹고, 엄마 일 갔다 오면 피곤해 보이셔서 말도 많이 못 했잖아요." 라며 딸아이가 말한다.


순간 미안함에 딸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10년 넘게 엄마가 일하는 긴 시간 동안 잘 견디며 바르게 잘 커준 딸아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저항하던 4살, 기관에 억지로 맡기며 눈물을 머금고 출근해야  했던 그야말로 고단한 워킹맘 생활이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오롯이 나의몫 이었다.  삶의 무게는 2~3배의 중압감으로 크게 다가왔다. 늘 양육과 일  선택의 기로에 서서 저울질해야 했다.



퇴사와 함께 맞물린(퇴사 다음날 바로 이사) 정신없이 한 제주 이주, 벌써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간 가족에게 대화의 삶은 없었다. 그저 쳇바퀴 돌아가는 삶이었다. 눈을 뜨면 출근하기, 아이들은 등교하기 바빴다. 퇴근 후엔 아이들 안부도 묻기 전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주방으로 달려가 저녁을 빠르게 준비하던 삶이었다. 아이들과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 직장에서  소진해버린  에너지 덕분에  아이들과 하루 일과에 대해 물어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늘어진 몸으로 TV 시청하며 한두 시간 휴식 시간을 갖은 뒤  주방과 밀린 집안 살림을 정리하고  잠을 청하기 바빴다.


하루하루 지치고 대화가 부족한  저녁이 없는 건조한 패턴의 삶이 이어졌다.

워킹맘 생활에  남편과도 몇 년 동안 떨어져 서로의 빈 공간이 크게 자리 잡았던 시간...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에 역부족이었던 역량 덕분에  아이들과  무던히도 어색한 사이가 돼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긴밀한 대화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터다.



 완전체 가족이 된 시점, 다른 삶의 패턴이 이어진다. 가족 간의 풍성한 대화로 저녁 삶이 생겼다.


이사와 동시에 워킹맘에서 전업맘으로 전환되면서 가족들에게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다.

집과 학교 간의 등교 거리가 멀어 아침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아침 컨디션을 살핀다.

하교 후 딸과 저녁을 먹고  매일 반려견 산책을 함께 하며 학교생활에 대해 질문하며 딸아이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알아가고 있다. 새로운 전학 간  학교 시스템과 담임선생님, 교우들에 대해 정보를 얻고 학교생활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지? 힘든 점은 없는지? 딸아이의 마음 상태를 살피게 된다.




나 또한 국민학교 5학년 때 시골 작은 분교에서 대도시 서울로 이사오며 어린 마음에 감당해야 했던 낯선 어려움(지독한 향수병, 시골친구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 )들을  겪어내야 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 감당해야 했던 전학 이야기를 꺼내며 딸아이의 마음을 공감하며 위로하며 다독인다. 그 덕분인지 긴밀한 비밀 얘기도 공유하며  서로의 어색했던 거리의 간극이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이에 더해 고민 거리등을 듣게 되면서 먼저 그 과정을 밟아본 선배로서 조언도 해주는 시간이 되고 있다.


서로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사춘기 첫째 아들과도 마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편안한 분위기와 더불어 자연스레 대화가 오가며 미움의 감정이 이해의 감정으로 변모해가는 중이다.


이전 삶은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침을 차려도 먹는 둥 마는 둥 시간에 쫓겨 각자 집을 나설 때가 많았고, 저녁은 서로 먹는 시간이 상이해 각자 해결할 때가 많았다.

출근 준비 대신 아침을 준비하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직접 맞이하고 마당 테이블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식사하는 동안 대화가 풍성해졌다. 아빠의 유머 덕분에 웃음꽃이 자주 핀다. 거실보다는 마당에서 주로 저녁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자연스레 TV와, 핸드폰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같이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가끔 바다 산책을 즐기며 바다 앞에서 버스킹 하는 가수들도 만나고 있다.  밤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이제 사춘기 아들은 아빠만큼 낚싯대를 잘 다룬다. 아이와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남편은 집 마당에서 손질해 구이를 해주기도  하고, 서툰 솜씨지만 회를 떠주기도 한다. 어렵게 손질해서 먹는 물고기라 그런지 그 맛은 더욱 일품이다.


 

그토록 갈망했던 "저녁이 있는 삶"이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하루 종일 분주했던 삶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부자의 삶으로 전환되고 있다. 자연이 선사하는 풍경에  서로를 향한 온기와 애정이 부족한 삶에서 배려와 이해의 폭을 넓히려 애쓰는 가운데  여유와 느림이라는 아지트가 생겨났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했던 쳇바퀴의 삶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저녁삶을  공유하는 찰나들이 값진 의미의 시간이 된다. 세상의 속도가 아닌 우리 가족만의 삶의 속도로 항해 중이다.










이전 20화 방울토마토와 초록고추가 주렁주렁 열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