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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샘 Aug 25. 2021

노모가 용돈 50만원을 주신 의미는?

더 늦기전에, 더 시간이 흐르기전에


"여보세요"

"우리 셋째 딸 , 잘 지냈어?"

"네~~ 엄마, 잘 지내시죠?"



"이번 주말에 엄마한테 올 수 있어?"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우리 딸 보고 싶어서지..."



순간 아차 싶었다.

요즘  일하느라 아이들 케어하느라 정신없이 여름을 보냈던 터라 친정 노모께 6월에 전화드리고 한 달 이상을  안부를 묻지 못한  사실을 자각했다. 올여름 얼마나 더웠던가? 이 더운 여름에 더위와 사투하며  홀로 지내셨을 텐데, 내 상황이 힘들다고 버겁다고  엄마께 전화 한번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을 넘어  큰 죄를  기분이 들었다.


"네, 엄마 이번 주 토요일에 갈게요."


주말에 이르러 딸아이와  친정에 갔다.

 "엄마, 백신은 맞으신 거 안 아프셨어요? 이제야 백신 안부를 물었다.(엄마 이 무심한 딸을 용서해 주세요.)



다행히 1차, 2차 팔만 뻐근하시고 무탈하게 넘어가셨다고 했다. 79세, 내년이면 80 , 여든의 나이가 믿기지가 않는다. 풍성했던 엄마의 머리는, 결이 얇아진 흰 백발의 노인이 되셨다. 몸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왜소해지시고 손발은 그 모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굵은 주름으로 덮여 있었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많이 드신 노모가 되셨나 하는 마음에  애잔해졌다. 



엄마와 간만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밀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슬쩍 흰 봉투를 내미신다.


"엄마, 이게 뭐예요?"

"엄마가 주고 싶었어. 그동안 엄마가 매일 받기만 했잖아"   "어릴 때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 고 하셨다.

"엄마, 나한테 줄 돈이 어디 있다고요? 쓰실 용돈도 부족하실 텐데!"

"빨리 넣으셔요.  제가 드리면 드렸지, 제가 왜 받아요?"



한사코 안 받겠다고 봉투를 밀어냈지만 엄마는 나 쪽으로 던지셨다. 완강히 거부했지만 엄마는 딸에게 용돈 한번 줄 수 있다고 하시며 안 받으면 화내겠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용돈 봉투를 받았다.

이 기분은 뭐지? 기분이 묘했다. 감사하기보단 죄송했다.

이런 적이 없으셨다. 설날 세뱃돈 말고는 용돈을 주신적이 없으셨는데...

그리고 엄마 본인이 쓰시기에도 빠듯한 상황 뻔히 아는데...



이날 따라 조금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아끼시던 화장품, 비타민을 건네시는 것이 아닌가? "화장품 써라 , 늙은 얼굴에 바르면 얼마나 표가 난다고" "비타민도 이거 너 먹고 힘내"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저것이  보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할머니분이 요양원에 가셨다고 했다. 옆집 할머니는 아주 멋쟁이셨는데  치매끼가 있으셔서 예쁜 옷이랑 액세서리를 주시면서 가셨다고 내게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치매라는 단어를 내 머리에 품어본 적이 없다. 치매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있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친구분의 치매 이야기를 하시면서 풀이 죽어 계셨다. 마음이 스산해졌다. 저며왔다. 우리 친정엄마도.. 치매를 생각해야 할 때가 도래한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주시는 용돈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그냥 용돈이 아니구나' '엄마가 많이 외로우시구나' '용돈이라도 줘서라도 자식들 얼굴 보고 싶으신 거구나' 하는 생각에  죄송스럽고 불효자가 된 듯했다.


세상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철인 엄마였다.

남편(아버지)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5남매를 키워내신 분이시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자식들 먹을 밥해놓고 하루에 투잡, 쓰리잡도 하셨던 분이셨다. 늘 엄마는 10시 넘어서 녹초 된 몸으로 집으로 귀가하셨다. 어린 시절 동생과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다 잠든 적이 많았다. 엄마의 빈자리가 무척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식들한테 늘 미안해하셨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술만 먹고 가정에 무던히도 소홀했던  남편, 거기에 바람까지...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1도 수행하지 않으셨다. 여기에 며느리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 그리고 줄줄이  5명의 자식들... 나 또한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가 되어보니 그 삶이 얼마나 서럽고 한스러우셨을까 싶다.


크나큰 고통과 막중한 삶의 무게가  가녀린 엄마의 어깨를 얼마나 크게 짓눌렀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그렇게 한평생을살아내시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안 하셨던 분이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실까 봐 새벽 운동, 걷기 꾸준히 실행하며  건강관리하시는 분이시다. 또 바쁜 자식들 짐이 될까 봐 여태 한 번도 먼저 집에 오라고 전화하시던 분이 아니셨다.  그러기에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해졌다. 불안이 엄습했다.



요즘엔 자식들한테 번갈아 전화하시며

'엄마 심심해' '엄마 보러 언제 올래?' 하실 때면

마음이 편치 않다. 결코 예전의 강인했던 엄마가 아니시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엄마께  한 번이라도 더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야겠다. 5남매이면 뭐하나? 각자 먹고살기 바쁘다고 노모의 안부는 내팽개치듯  묻지 않으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5남매 단체 카카오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오빠, 언니들  요즘 엄마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어. 많이 외로워하셔.  엄마 건강하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자.  그리고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엄마, 엄마가 주신 용돈 감사히 받을게요.

그리고 2배, 아니 3배로 돌려드릴게요.

이 용돈의 의미를 알기에 그냥 써버릴 수가 없어요.


엄마는 어릴 적 우리들에게

용돈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괜찮아요~


그때 결핍, 부족함이

저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 된걸요.


부족함을 알기에

하나하나 소소하게 채워가는

소중함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미안해하지 마세요.



당신의 전부를 걸어 지켜주었던 견딤의 삶, 등대가 되어 환히 비쳐주셨던 빛의 삶,

그 노고의 시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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