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교사가 되기위해 몸부림쳤던 5년.

난 비정규직교사이다

by 서나샘

이곳에 근무하기전까지는 나는 전혀 체감하지 못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를...

다름아닌 바로 이곳 학교에서


정규직과는 달리 일하는기간에 정함이있고 근로방식및 기간,고용의 지속성 등에서 정규직과 달리 보장을 받지 못하는것이 비정규직이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교사이다.

다행히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 아이들과 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예전보다는 많이 덜어냈지만 아직도 한쪽구석은 여전하다.


학교는 임용시험을 보고 당당히 합격하신 교사들의 근무지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비정규직교사인 나는 미운오리새끼마냥 그 자리에 껴서 날개를 활짝 피지 못한채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미운오리새끼가 아닌 백조처럼 당당히 날개를 펴보이고 싶어 임용시험을 준비에 돌입했다.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이 필요했다. 그래서 바로 EBS 강의를들으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준비를 했다.


얼마만에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것인가?

공부를 한다는 자체가 마냥 행복했다.

학교다닐때는 그렇게 하기 싫었던 그냥 암기과목으로만 치부했던 역사공부가 아이둘낳은 30대 아줌마가

되고서야 이렇게 피부에 와닿고 재미있을줄이야...


감사하게도 한국사능력검정 시험에서 첫회에 합격을 했다.

'나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할 수 있겠다'라는 신념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그래 할수 있어!'이제 다음단계인 임용시험만 보면되는구나! 하고 그 열정에 바로 임용에 필요한 서적들을 구입했다.

기쁜마음으로 호기롭게 스타트는 했는데....

말이 임용시험이지....

현장에서 일하면서, 두아이 육아하면서,집안살림까지 하면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공부하기란

결코쉬운일이 아니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넘 악조건이었지만 정교사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지칠줄 모르고 학습량을 늘려갔다.

주말에 아이들을 방치하며, 내공부하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 밥은 늘 한그릇 음식이었다.(볶음밥,카레,비빔밥,주먹밥....)

1년, 2년,......5년까지 조금씩 시험성적은 올랐다.

하.지.만.

몇백대 :1 경쟁률에서 내게 합격의 기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커트라인에 가까운 점수도 받아보았지만

늘 1차에서 불합격이었다.

1점차이로 아니 0.1점차에 수많은 수험생들의 운명이 갈렸다.

젊고 어린 20대 아가씨 선생님들과 공부에 하루를 올인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자책감,열등감,무능력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나름 장학금도 받고 공부했던 나인데, 현장에서 일한경력이 몇년인데 실력이 이정도 밖에 안되나 하고 스스로를 자괴감 구렁텅이에 몰아 넣었다.


'나는 조금더 내가 인정받고 싶어서,안정된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건만.. 현실은 날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워킹맘이었고,아이둘을 케어해야하는 엄마였고,아내이자 며느리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많은

수험생이었다.

이 악조건을 이겨내고도 싶었고' 일하면서도 공부해서 엄마는 꿈을 이뤄냈다' 라고

아이들에게 좀더 당당하게 꿈을 이룬 롤모델 엄마가 되고싶었는데....

너무 과한 욕심이었을까?


공부를 하는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 가정은 엉망진창이 되가고 있었다.

첫째 큰아이는 사춘기에 돌입하면서 나와 사사건건 부딪히기 시작했다.

아들과의 관계가 최대로 악화되었다.

둘째 딸아이는 나에게 더 불안애착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남편도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면서 짜증과 불만이 늘어갔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가족이 넘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정말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르고 내 자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든시기를 꼭 이겨내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엔 이 모든것이 큰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일까?


어느날 갑자기 몸에 이상신호가 나타났다.

아이들 임신했을때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하혈을 했다.

하루이틀에 끝나지 않은 하혈은 계속되어 큰일났다는 직감으로

산부인과에 달려갔다. 그날 바로 수술을 해야 했다.

'스트레스성 자궁내막증'

의사샘이 묻는다.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30대 후반이라고 하자

심각하면 자궁을 들어낼수 있다고...그런데 나이가 아직 많지 않으니 치료를 하며 지켜보자고...


아.......직감해야 했다.

'임용시험의 끈을 놓아야겠구나! 여기까지구나! 그래야 내가 살겠구나!'

'건강을 잃고선 아무것도 할수 없구나'를 깨달았다.


이 사실을 직감하는순간

5년간 아둥바둥 공부하며 악착같이 버텨왔던 모든 순간들이 먼지가 되어

산산히 부서져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무하고 끝없는 절망으로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지금도 이글을 쓰면서 눈물이 흐른다.

그때의 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나를 아프게 한다.

열심히 살고 공부하며 내 꿈을 이뤄가고 싶은데 건강이 발목을 잡은것 같은 느낌....

내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 이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몇달동안 약을 복용하며 치료에 전념했다.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고 또 한번의 수술을 해야 했다.

자궁내막의 안좋은 것들을 또 긁어내야만 했다.


건강으로 인해 모든걸 내려 놔야 하는 순간이 왔다.

손떼묻은 책들을 내손으로 정리해야 했다.

전공서적,필기하고 정리했던 노트들,논술프린트,출퇴근하며 암기목록을 적었던 작은 수첩들..

정리하면서도 또 눈물이 났다.

노트앞에 적어 매일보며 다짐했던 문구ㅠ
필기하고 요약하며 공부했던 노트들




하지만 잘 보내줘야 했다.

임용까페에 전공서적들은 나눔하고 각종 프린트물은 분리수거함에 버리고....

각종 임용의 흔적들과 안녕을 고하는 순간...

허무함과 동시에 해방감도 들었다. 내 족쇠를 벗어던진것 같은 홀가분함...

꿈을 위해 원없이 공부해봤으니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는 후련함도 있었다.


이때 문득 스친 생각은..지금 이상황에 감사하자...였다.

건강이 더 악화되기전에 알았으니 이것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을 이루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더 없이 행복했겠지만...



5년동안 공부하면서 물론 이득도 있다.

현장의 아이들을 연령특성과 심리를 잘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교육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부모님들을 상담기법,상황대처법등을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유아들과 상호작용법, 교육과정의 변천사,사회,과학,언어,미술,음악과정등을 더 체계적으로 익히고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난 5년이란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에 넘 갇혀 지내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열등감과 자책으로 내자신을 넘 힘들게 했다.

이젠 나를 속박하지 않기로 자유롭게 놔 주기로 했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주기로 했다.

'충분히 잘하고 있어, 이만큼 하는것도 대단한거야, 지금 이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함을 찾자!'

'일할수 있다는것,아이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는것,자상한 남편이 있다는것,'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러고 있니? 하며 무한 셀프칭찬과 긍정의 맘을 갖기로 했다.




그래 정규직 교사들은 그만큼의시간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그 자리에 있구나 라고 인정을 하고나니

내맘이 한결 가벼워지는걸 느꼈다.

임용시험을 몇년간 준비해 보니 그분들의 노력과 인내,끈기,수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을 이겨낸

수고스러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이젠 남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기로 했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꿈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안에 꿈틀대는 열정은 늘 무엇인가를 아직도 갈망하고 있는듯 하다.

공부가 아닌 다른 꿈을 위해 이 에너지를 쓰고 싶다.

앞으로 남의 것을 소비하는 삶이 아닌 내것을 생산해내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다른 꿈을 위해 비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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