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리를 갖고 싶다. 좋은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소리를 갈망한다. 둥근 손 모양, 단단한 손끝, 위팔의 릴랙스와 전신의 협응… 긁어모은 갖가지 지식들을 최대한의 스펙트럼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지만, 단 한순간도 소리의 좋고 나쁨이 귀에 달리 들어오지는 않는다. 좋은 소리라는 걸 알아차릴 순간이 내게도 오긴 올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피아노의 구조를 떠올려 보자. 자세가 좋은 소리를 만든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에 나는 좀처럼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피아노는 철저히 속도 중심의 발음 구조를 가진 악기이기 때문이다. 건반이 들어가는 속도의 차이만이 현을 때리는 힘을 결정하며, 그것이 피아노의 소리를 결정짓는 사실상 전부다. 이 단순한 매커니즘 앞에서는 다른 어떠한 설명도 설득력을 잃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건반에 닿기 전의 세계’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음을 치기 전의 손끝, 스치는 숨결 따위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그 주장 앞에서 나 역시 매번 흔들릴 따름이지만, 방금처럼 연습을 통해 거의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때마다 ‘그딴 건 죄다 감성에 호소하는 소리일 뿐’이라 푸념하곤 한다. 그러나 누가 나를 욕할 수 있을까. 기술이라기보다 신앙에 가까운 세계를 들여다 보는 듯한 감각을 한 번이라도 느껴 봤다면 말이다.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허락되었을 그 세계를 앞에 두고 난 또다시 길을 잃은 듯하다.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소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수필이 국어 선생님 눈에 띄어 교지에 올리기 위한 단편 소설을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의 난 그야말로 흥분과 분투에 빠진 몇 주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의욕만 가득한 풋내기가 내놓은 결과물이란 참담한 것이었다. 단편이란 장르를 막연히 짧고 쉬운 거라 얕보았던 게 패인이었다. 여러 실패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분량 안에 머릿속 모든 생각을 담으려는 욕심이었다. 덜어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 과잉의 산물은 내게 다시는 펼쳐보지 않을 역사가 되었고, 세상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괴로워하곤 한다.
어쩌면 피아노를 치는 것도 글쓰기와 비슷할지 모른다. 늘 의문으로 둘둘 싸갖고 돌아오는 숙제—좋은 소리를 위한 연습—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를 더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덜어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불필요한 힘을 빼고, 잡음을 줄이고, 꼭 필요한 소리만을 날카롭게 조준하기 위한 연습. 수많은 좋은 글들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췌구가 없다는 점일텐데, 좋은 소리 역시 군살을 철저히 깎아냄으로써 비로소 빛을 내는 보석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둥근 손, 단단한 손끝, 릴랙스…’와 같은 건반 바깥의 세계는 그 의식적인 작업을 돕는 도구로서 의미가 분명해진다.
호로비츠나 굴드와 같은 명 피아니스트들 중에는 도저히 좋다고 봐줄 수 없는 자세를 고집하며 연주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들의 납작한 손 모양이나 구부정한 자세를 목격하고 나면 적지 않은 이들이 여태껏 듣고 배워 온 것들과의 간극에서 인지부조화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 역시 사실은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코 나쁜 소리를 내지 않기에, 자세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일 뿐이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나쁜 자세로도 좋은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건반에 닿기 전의 세계’ 따위에 주목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특별하지 않기에 잠자코 정석의 길을 따라야 한다.
글의 군더더기를 덜고 나면 앙상한 뼈대만 남지 않을까 우려했던 시절의 내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문장력은 연필이 아니라 지우개가 길러준다는 사실을. 소리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좋은 소리를 갖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리를 지우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자세와 손모양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서투름의 때를 빼는 과정을 잘 마친 연주가 앙상하고 밋밋하게 들릴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는 모두 각자의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지 않던가. 그것이 좋은 자세로 만들어졌든, 그렇지 않든간에.
피아노 연습의 포커스를 ‘좋은 소리 내기’에서 ‘나쁜 소리 줄이기’로 옮겨 놓고 보면, 부분 연습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납득이 간다. 청소는 늘 작은 단위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정석이기에. 부분 연습이란 곧 곡 전체의 위생을 결정짓는 매일의 정리 습관과도 같다.
모짜르트 소나타에 정식으로 입문해 보려 한다.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 해도 아직은 동의하기 어려운 레벨 선택이지만, 한편으론 얼마든지 쳐도 된다는 소리도 듣는다. 다루는 음이 많아질수록 좋은 소리에 대한 부담감 또한 커지리라는 건 알지만, 한 곡을 완성하겠다는 각오는 일찌감치 버리고, 하나의 음이라도 좋은 소리로 내 보겠다는 마음을 다스리며 새 악보를 마주하고 있다. 한 마디 한 마디 넘어설 때마다 한숨이 목밑에서 새어 나오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숨소리마저 연습의 일부라 믿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