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표회

by 익호

좋은 피아노가 무엇인지 모른다. 더 구체적으로는 좋은 소리를 내는 피아노가 어떤 것인지 구별할 줄 모른다. 다만 이제까지 손을 올려 본 피아노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소리를 내는 것들이 있기는 했다. 그중 하나는 다니는 미용실 근처 연습실에 있다. 왜 욕실처럼 에코가 많은 공간에서 노래할 때 실제보다 잘 부르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이 피아노가 딱 그런 느낌이다. 피아노 자체의 특성도 그런 편이겠지만 넓은 지하라는 어쿠스틱이 많은 리버브를 낸다. 그러나 레스너 왈, 과한 울림은 귀에는 좋을지 몰라도 연습에는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다른 하나는 가장 최근 레슨 때 빌렸던 스튜디오에 놓인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다. 연식도 비교적 최근이고 조율에도 공을 들였는지 깨끗하고 정돈된 음을 내는 게 마음에 들었었다. 페달이 상당히 얕게 조정되어 있다는 점도 내게는 다루기 편한 느낌이라 좋았다.


좋은 피아노, 혹은 좋은 소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공부해야 할 거리가 한가득이지만, 또 안목의 성장이란 세월의 도움을 반드시 요한다는 것도 알지만, 최근 급하게 물색하는 이유가 있다. 발표회를 한 번 가질까 해서다. 발표회. 얼마간 거창하게 들릴 게 뻔한 단어다. 그러나 난 그곳에 아무도 초대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청중은 스마트폰 카메라 한 대가 전부. 곡도 딱 한 곡, 지금 분투 중인 모짜르트 소나타 K.332의 1악장만을 올릴 것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준비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

청중도 없고 곡도 달랑 한 곡. 촬영이라는 변수를 제외한다면 평소에 연습실을 빌릴 때랑 무엇이 다른지 싶기도 하다. 그렇다. 스스로도 명확한 구실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모짜르트에서 크게 휘청거리다가 새로운 시도를 해 봐야겠다는 막연한 충동이 나를 이끌었을 뿐이다. 행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목표 없는 독학의 항로란 표류하기 쉽고, 어쩌면 이미 떠다닌 지 오래 일지 모른다. 내게는 일종의 웨이포인트가 필요하다. 약간은 강제로 나를 이끌어 줄 이정표가 말이다.

연습실은 일찌감치 예약해 두었다. 그날까지는 싫어도 피아노 앞에 줄곧 붙어있어야 할 것이다.

모짜르트에 입문한 지 벌써 여러 주가 지났지만, 그의 소나타는 아직도 굳건한 난제다. 예상했듯 기술적 어려움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고, 피아노를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가장 심란하게 하는 테크닉—꾸밈음—은 이 곡에서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시선을 조금 다르게 두어 보고자 했다. 건반을 떠나서, 그간 피아노를 치면서 늘 개운치 않던 의문들을 하나로 뭉쳐 선명한 표제로 끌어내 보는 것.


‘곡을 칠 수 있다’의 진짜 의미는?


어떤 이는 악보의 모든 음을 전부 누를 수 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일 뿐, 아직 곡을 칠 수 있다 칭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고도 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는 그 단계에조차 쉽사리 오르지 못하고 있다.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노력을 붓는 일이 예술이라면 이제 슬슬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어려운 마디 앞에서는 인내심이 금세 바닥나버리고 만다. 물론 이쯤에서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 결심이 얼마큼 굳건하더라도 완곡의 가능성을 늘려주지는 않는 것 같다. 성공과 포기의 중간 지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남아있을까.


평범한 하루를 떼어 발표회라는 이름을 붙여보고자 한 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떠오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포기와 수용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더라도 계속 나아갈 의미가 있는지. 그것이 피아노를 취미로 삼아 오면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좋은 피아노를 고르려 심사숙고했던 것도, 가망 없어 보이는 손끝 기술에 조금이라도 긍정의 기운을 담아볼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곡이 절로 쳐지지 않는다는 건 자명하다. 이제는 할 만큼 해볼 수밖에. 자, 어디부터 시작할까. 안 되는 것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었지. 그렇다면 아예 기술을 내려놓자. 속도를 한참 늦추고, 어려운 음형은 또박또박 짚기만 하자. 꾸밈음도 죄다 빼 버리자. J의 메모도 염두에 두자—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기.


발표회를 위한 집중 연습. 효과는 보았을까? 반쯤은 그런 듯하다. 하루하루 성실히 임했다. 데드라인이 있는 일에는 의외로 고지식해지는 편이기도 하다. 다만, 그 매일의 연습이 비장한 각오로 시작되긴 했어도, 어느 순간 시야는 뿌옇게 변하고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뿐인 평소의 나로 매번 돌아와 있었다. 늘 그렇듯 실재는 사유만큼 독특하지 않고, 현상은 더더욱 단순한 것인가 보다.


발표회 당일. 아무도 없는 겨울날 늦은 저녁 시간. 연습실에 홀로 도착했다. 텅 빈 공간에 불을 켜자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피아노로 향하는 순간, 걸음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다음 순간에는 걸음보다 한층 큰 심장 소리가 울린다. 듣는 이 하나 없는데도 마음이 흐트러지고 마는 스스로에게 씁쓸한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애써 진정시키지는 않기로 한다. 의자에 앉는다. 높이를 맞추며 여러 번 고쳐 앉는다. 마침내 손을 건반에 올린다. 그리고 준비된 것 같지 않은 순간에 첫 음을 뗀다. 여기까지는 수없이 반복해 도착한 자리다. 이다음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매번 그렇듯이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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