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주 앞둔 주말 오후, 차가운 타일 바닥을 맨발로 들락거리며 내 키를 훌쩍 넘게 쌓인 박스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새집 창고로 장소만 옮긴 채 다음번 이사 때까지 처박혀 있을게 뻔한 짐더미들. 이제는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을 구닥다리들 사이에서 건질 만한 것이 있는지, 더 정확하게는 버려서는 안 될 게 남아있기는 한지 하나씩 들춰보는 데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다.
추억 끝자락을 헤집어야 간신히 떠오르는 유물들이 하나 둘 튀어나올 때마다 감상에 빠지기도 수차례. 이것들을 오늘 안에 끝장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무렵 저 구석편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기설기 닫아놓기만 한 다른 것들과는 달리 꼼꼼하게 테이프를 발라 놓은 모양새가 눈길을 끌었고, 나는 시린 발도 좀 녹일 겸 그걸 통째로 들고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묵직한 상자에 둘둘 감긴 테이프는 겉으로는 튼튼해 보였지만 도구를 꺼내 올 필요는 없었다. 세월과 햇볕과 습기에 반쯤 삭아 손톱으로도 쉽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악보였다. 할아버지의 옛 악보들이다.
그의 유학 시절 교재로 썼을 까마득한 시절의 골동품들은 대부분 처분했거나 잃어버렸을 터이니 분명 그 시대의 물건은 아닐 것이다. 몇 권을 꺼내어 표지를 살펴보았다. 슬리브 케이스까지 갖춘 견실한 만듦새가 최근 출판되는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이 칠십년대 중반 즈음 국내에서 출간된 것들이었다. 그 즈음은 할아버지가 은퇴 후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시던 시절이다.
바흐 클라비어 작품집, 슈만 소나타, 라벨, 리스트… 본래는 새하얬겠으나 이제는 갈색으로 바스러져가는 겉표지에는 한자 섞인 옛 시대의 철자가 줄줄이 새겨 있다. 그것들을 모조리 꺼내 놓자 맨 아래에서는 조금 더 뒷 시대의 컬러 표지 악보들이 서너 권 나왔다. 내 학원 시절에 쓴 초급용 연습곡집들이다. 구십년대 초의 물건이라 앞선 것들보다야 상태가 훨씬 나았지만, 이들 역시 세월의 흔적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할아버지의 악보와 한때 내 것이었던 악보. 먼지와 곰팡이와 묵은 종이 냄새에 둘러싸여 나는 그것들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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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살던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한길 건너에 살던 이모네 집에도 마찬가지로 피아노가 있었다. 당시 한창 붐이던 피아노 교육에 편승해 들인 것들은 아니었다. 그 몇 대의 피아노는 모두 당시로서도 연식이 쌓인, 할아버지가 쓰다 물려주신 것들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중풍으로 한차례 쓰러지신 뒤였기에 교육자로서의 할아버지를 목격한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의 연주를 들어본 기억도 내겐 없다. 피아노 교실이 문을 닫고 병중인 할아버지의 손이 닿는 일도 점차 줄고, 어머니와 이모도 각자의 인생에 바빠지고. 그렇게 아무도 치는 이 없이 방치되어 간 피아노들은 내가 악기를 배울 만한 나이가 되었을 무렵엔 이미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우리 집 거실의 피아노. 그것은 내겐 악기라기보다는 가장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존재했던 배경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어머니를 졸라 학원을 잠시 다녔지만 이내 그만둬 버린 그 해에 할아버지는 집에서 잠드시듯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단 한 번, 할아버지가 피아노 앞에 앉으셨던 날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병이 깊어 두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아주 천천히, 음 하나하나를 짚어가는 연주. 아니, 연주라기보다는 소리 내기에 가까운 행위. 왜 그날 저녁 할아버지와 내가 단둘이 거실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그 순간 그가 어떤 마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손자의 소식을 듣고 몸소 무언가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라도 드셨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닥치기 전에 당신의 평생을 바쳤던 악기를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으셨던 것일까. 타인의 심중을 헤아리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사소한 눈치마저도 없을 만큼 어렸던 나는 그저 옆에 서서 왜 빨리 다음 음을 치지 않나, 의아해하며 할아버지를 재촉할 뿐이었다.
박스에서 꺼낸 악보들 사이에 할아버지의 자필 악보가 섞여있었다. ”근화사“라는 표제를 단 가곡집과 “봄 꿈”이라는 소품집. 거의 한 세기를 묵은, 펼치기도 조심스러운 페이지를 펼치자 할아버지의 옛 사진이 한 장 튀어나왔다. 복장과 얼굴로 어림잡아 지금의 나보다 십수년은 어렸을 시절의 할아버지. 피아노 위에 가지런히 놓인 젊은 시절 그의 손이 서른네살 먹은 내 손과도 닮은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운이나 시간 따위가 조금만 비껴갔더라면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었을 피아노. 내게도 가능성 비슷한 게 있었을까. 혹 있었다고 한들 이제는 바래고 시들어버렸을까. 오늘 찾아낸 유물들처럼.
이사를 한 주 앞두고 있다. 이 기회에 많은 것을 비우리라 마음먹은 참이다. 가구도 대부분 처분을 예약해 두었고, 지금 정리 중인 창고의 짐들이 막바지 작업이다. 살아오면서 쌓인 잡동사니들을 치운다고 해서 인생에 대단한 틈이나 해방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도 어쩌면, 새로 옮기는 집 한 귀퉁이에 싸구려 디지털 피아노 한 대 놓을 정도의 여유는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있었을지조차 확실치 않은 지난날의 재능을 돌이키겠다는 낭만 섞인 농담을 꺼내려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아무리 애써 본들, 그것은 빛바랜 유물을 꺼내 보는 정도의 몸짓에 불과할 테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할아버지가 남긴 자필 음표들을 덧그릴 만큼의 몸짓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만큼은 바라보아도 괜찮을까.
서른네살의 가을, 나는 할아버지의 유품들을 결코 진지하지는 않은 상상과 함께 새 상자에 옮겨 담고, 윗면에 ‘피아노 악보‘라고 적은 뒤 이삿짐들 사이에 잘 갈무리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