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입문으로 선택한 소나타 12번의 1악장. 이 곡을 고른 데 특별한 까닭은 없다. 오래 붙잡고 있던 인벤션 8번과 동일한 조성이라는 점을 갖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조차 시작하고 나서야 알아차린 사실이다. 이 곡이 모짜르트 입문으로 삼기에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멀리 뛰어 보기로 이미 마음을 정한 터다. J도 한마디 보태지 않았던가.
‘I am a boy’ 배웠는데 굳이 ‘I am a girl’을 또 배울 필요 있을까요? 자꾸 어려운 거에 도전해야 늘죠.
처음 펼친 악보는 깔끔한 인상이었다. 지금껏 쳐 온 소나티네와도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라는 점에 막연한 외경심 비슷한 것을 품고 있었는데, 생각 외로 음표가 듬성듬성한 것을 보고서 친근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손을 대려 하니 어딘지 두려운 느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는다.
오프닝. 우아하고 평온하게 도입하는 악장이다. 잔잔한 춤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누군가 이 소나타에 백조라는 별칭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은데, 과연 잘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3박자 계열의 곡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서 들떠버린 양손이 머리보다 눈보다 먼저 나섰지만, 다섯 마디도 채 못 가 멎고 말았다. 생전 처음 보는 음형이 등장한 것이다. 뭐, 그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일단은 체크해 두고 계속 앞으로 가 보자. 두 마디를 건너자 또 다른 낯선 음형이 나타났다. 이번에야말로 부분 연습이 필요한 순간인 듯하다. 여남은 번쯤 반복해 손에 익히고 나서 다음 마디로 나아가려 하지만, 또 금세 제동이 걸린다. 왼손 3도라는 테크니컬한 복병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이쯤에서 슬슬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두 손을 내리고 시선을 멀리 내다보니, 이어지는 마디들마다 처음 보는 형태, 혹은 척 보기에도 어려워 보이는 음형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곡을 처음 읽을 때 자주 멈추는 것쯤 초보자에겐 당연한 일이다. 여태껏 안 그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신동이라 불리는 작곡가는 창작은 어딘지 다르다.
리딩이란 것은 결국 일종의 문제 풀이라 볼 수도 있을 텐데, 인벤션이나 소나티네를 다룰 때는 어렵기는 해도 항상 같은 과목의 문제를 푼다는 느낌이 있었다. 반면에 모짜르트의 소나타는 마디마다 완전히 다른 영역의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나면 느닷없이 고전 시가 문제가 등장하고, 그걸 또 어렵사리 넘기면 이번에는 유연성과 순발력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소나티네에서 종종 나를 안심시키던 쉬운(단번에 쳐내는) 연결구간 따위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체르니도 인벤션도 소나티네도 핵심이 되는 한두 가지 테크닉을 해결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구조였다. 때문에 첫 문제에서 좌절하지만 않는다면야 전체를 풀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완성도는 민망할 수준일지라도, 부분 연습을 통해 핵심만 익히면 어쨌든 전체를 그려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모짜르트의 소나타는 이제껏 내가 의지해 온 약발이 듣질 않는 신세계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얼굴로 매 순간 곤란한 문제를 들이미는 마디들을 보라. 산 넘어 산, 당최 숨을 고를 여유도 주지 않는다. 마치 철인 삼종 훈련이라도 시키듯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죽는 것을 반복해 패턴을 학습해 나가는 것을 컨텐츠로 삼는 게임 장르가 있다. 보통 도입부에서 간단한 튜토리얼만이 제시되고, 즉시 실전에 던져진 플레이어가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경험을 밑천으로 난관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데서 재미를 얻는 구조다. 이제까지 연습해 온 인벤션과 소나티네는 친절한 연습 모드에 불과했던 것일까. 모짜르트라는 전장에 던져지자마자 쏟아지는 도전과제 앞에서 나는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하나의 관문을 넘어설 때마다 나머지가 쉬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정교해져만 가는 상황에서 한두 가지 과제를 운 좋게 해결한들 곡을 제대로 완성시킬 수 있을까. 그전에 내가 이제껏 의지해 온 연습의 방법론이 여기서 과연 통하기나 할까 의심스럽다. 악보의 끝까지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거듭해서 깨지게 될까. 부분 연습이 전체를 견인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척, 안일하게도 월반을 결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난 벌써 마음이 쪼그라들고 있다.
삶에서도 어떤 도전들은 문제점 한두 가지를 해결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처리해야 하는 골칫거리들은 늘 이중 삼중의 가지를 뻗어 괴롭힐 때가 많지 않았던가. 초년의 나는 그럴 때마다 성장이 더딘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었다. 그뿐인가. 작은 부분의 실패를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서는 조용히 포기라는 버튼을 눌렀던 순간도 숱했다. 자포자기의 태도는 어느 순간 패턴이 되어 한동안 나를 지배해 왔던 모양이다. 날이 갈수록 포기하는 게 더 익숙해졌던 것이다. 항상 준비되어 있는 마음속 문장에 마침표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놓친 일들을 헤아리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삶의 풍파에서 조금은 비껴 설 요령을 터득한 지금, 다시 떠올려 본다. 삶의 여러 지점에서 난제를 풀어내지 못했던 까닭은 내가 무언가 부족했다기보다, 문제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일부 인정하게 되었다. 삶의 난이도도 피아노 학습 진도처럼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못해서 못했던 것이 아니라, 어려워서 어려웠던 일들. 포기라는 구두점을 단박에 찍으려 하지 말고, 잠시 내버려 두어도 괜찮았을텐데.
삶에서는 얼마간의 노련함을 체득했다 하더라도, 피아노에서는 아직 새파란 초보인 나다. 어려운 과제를 들이미는 마디마다 멈춰 서서는 또다시 포기의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대로라면 일곱 쪽짜리 소나타 한 악장을 다 읽는 데에만 몇 달이 걸릴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만약 왼손 3도나 꽉 찬 트릴 같은 기술을 미리 완성하고 나서 모짜르트에 덤벼들었다면 지금보다 한결 쉽게 느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내게는 부분의 테크닉에 집착하는 연습보다, 곡 전체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려낼 줄 아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단단히 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일단 비껴 두는 변별력, 혹은 통찰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뭐라고 부르든간에 부분의 실패에 걸려 넘어져 전체를 포기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지금 나는 부분의 성공이 전체를 보장하던 단순한 세계에서, 좀 더 전체를 다뤄야 하는 새로운 국면—모짜르트라는 가경—의 초입에 서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