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의 미학

나의 일상

by 에메

“that lovely poem that didn’t get written because someone knocked on the door.”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데

이런 문장이 나왔다.


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가 방해(interruption)의 대가를 이야기하면서 인용한 표현이다.

그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쓰이지 못한 그 아름다운 시(that lovely poem that didn’t get written because someone knocked on the door)”라고 말하며, 창작이나 중요한 순간이 방해로 인해 사라지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 문장은 단순히 시 한 편의 유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맞닥뜨리는 수많은 방해와 중단의 순간들을 상징한다.

창작의 불꽃이 일렁이는 찰나, 혹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아오르는 순간에,

세상은 늘 문을 두드린다.

전화벨, 메시지 알림, 갑작스러운 부탁, 혹은 단순한 일상의 소음이 그 문 두드림이 된다.


쓰이지 못한 시는 단지 문학적 손실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가능성의 상실이다.

우리가 집중을 잃을 때,

마음속에서 피어나려던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방해의 대가는

단순한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영원히 놓쳐버린 가능성이다.

콜리지가 Kubla Khan을 완성하지 못한 것처럼,

수많은 창작자들이 방해로 인해 불완전한 작품을 남긴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단지 예술가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쓰이지 못한 시는 존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세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방문, 누군가의 목소리, 누군가의 요청은 우리를 타인과 연결한다.

쓰이지 못한 시가 아쉬운 만큼, 그 문 두드림이 만들어낸 관계와 경험 또한 삶의 일부다.

방해는 때로 귀찮음이지만,

동시에 인간적 연결의 시작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우리는 때로 문을 열고 세상과 마주해야 하고,

때로는 문을 닫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쓰이지 못한 시를 아쉬워하기보다,

쓰일 수 있는 순간을 지켜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집중을 지키는 태도,

고요를 선택하는 결단이야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아름다운 시는 어쩌면 아직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

방해가 지나간 뒤,

다시 고요를 찾아내는 사람이 결국 그 시를 완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는 단지 한 편의 문학이 아니라,

삶 속에서 지켜낸 가능성의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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