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한 딸이 일주일 만에 집에 왔다.
사립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보았는데, 오히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지금이 더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회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술잔을 기울였다. 딸은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이제 대학생이라고 스스로 잔을 따라 놓았다.
이야기꽃이 피다가 학교 생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중간고사와 학점 관리에 대해 조심스레 조언을 건넸다.
“엄마 기억에는 학교 들어가면 정신없잖아. 금세 중간고사야. 틈틈이 학점 관리 해야 할 거야. 잘하겠지만.”
그러나 아이는 갑자기
“엄마, 부담 주지 마.”
라고 말했다.
순간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참아왔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참다 보니 잠시 냉랭한 시간이 흘렀고, 옆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엄마가 얼마나 너를 믿는데, 잘할 거라는 걸 아니까 이야기하는 거지.”
라고 덧붙여 주셨다.
그리고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토요일 밤이면 함께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던 딸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엇이 부족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에는 항상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날카롭거나
말이 없어지거나
그녀 나름대로의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 딴에는 과하지 않은 조언 정도였다고 믿었는데, 아이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을까.
매일 내 품에서 있던 아이가 내 품에서 점점 멀어져 갈 때,
엄마는 생각한다.
잘하고 있겠지.
잘할 거야.
하지만 문득문득 나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수업을 빠지고 게임에 빠진 친구들,
연애에 빠져 공부를 놓친 친구들.
내 딸이 그런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또한 나에게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상상 속의 대학과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가 졸업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미 그녀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많은 친구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은 믿음 속에 섞인 의심처럼 들려 대화가 싫을 수도 있다.
다음날 아침,
딸은 학교에 간다고 했다.
나는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학교 생활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를 보냈다.
아이와의 거리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너무 가까우면 아이는 나 정도로만 성장할 것이다.
너무 멀어지면 혹시라도 아이가 흔들릴 때 엄마는 도움이 될 수 없다.
대학생이 된 딸은 이미 스스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을 것이다.
부모가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는 없지만, 그 말이 아이에게는 무게가 될 수도 있다.
나의 대학 생활을 돌이켜 보면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다.
왜 이걸 배우는지 고민하다가 결국 유학을 갔지만, 열심히 생활하지 못한 후회가 남았다.
그래서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모의 조언은 때로는 아이에게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믿음과 사랑이 담겨 있다.
내가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토록 조건 없이 사랑한 존재가 있을까?
그리고 아이가 자라며 느끼는 거리감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다. 그 거리를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든든히 곁에 있어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것이 자라나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균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