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치팅 문제를 여러 번 마주했다.
사실 나도 학생 시절에 커닝을 해본 적이 있고,
교직에 서서 10년 넘게 아이들을 보니 이제는 분위기만 봐도
“오늘은 이 아이가 커닝을 하겠구나”라는 감이 온다.
하지만 그 감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특히 엊그제 평소 너무도 얌전하던 한 여자아이가 시험을 보는 날,
그날 따라 아이는 온 몸으로 시험지를 꽁꽁 숨기며 지키려 했다.
느낌이 쎄하여 내가 시험지를 달라고 했을 때,
그 아이는 정말 처절하게 시험지를 놓지 않으려 했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보다, 그 아이가 왜 그렇게까지 시험지를 지키려 하는지에 더 마음이 갔다.
그것은 단순한 점수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결국 나는 시험을 그만 보도록 했고,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학원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교사로서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도덕과 이익의 경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정직과 공정성을 지켜야 하는 도덕적 책임과, 학원 운영과 학부모의 반응이라는 현실적 이익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시험지를 지키려는 처절함은 단순한 규칙 위반이 아니라,
“나는 지금 너무 힘들다”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신호를 읽어내고,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었다.
결국 다음 날,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 왜 시험지를 계속 숨겼어? " 하니
아이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냥 커닝은 선생님이 오해한 것으로
앞으로 잘하는 학생이 되기로 이야기를 했다.
이런 경우 정말 쉽지 않다.
교육은 결국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신뢰와 정직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이다.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왜 우리는 서로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다.
진실을 이야기 못하는 순간도
순간적인 선택으로 커닝을 선택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 질문 속에서 아이들은 규칙을 단순히 두려움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사의 자리에서 고민한다.
아이들의 작은 위반조차도 결국은 성장 과정의 한 장면으로 남을 수 있도록,
너를 믿는다
너를 믿는다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믿는 교육의 본질이며, 인간다움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