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자 제발
편리함을 알아버린 인간에게는 강제성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자주 보는 과학 채널에서 어떤 과학자분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편리함을 알아버린 인간은 편리를 추구하기 위해 자꾸 물건을 사드리고, 늘어난 물건은 또 그렇게 공간을 채운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여실히 느끼고 있다. 아주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기 위해 들여놓은 물건이 너무도 많았다. 예를 들면 야채 터는 돌돌이통. 야채를 씻고 잘 털어서 조금 시간을 들여 말리거나 페이퍼 타월로 닦아도 상관없지만 돌돌이를 알아버린 인간은 이제 돌돌이 없이는 살기 어려운 습관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냐면 강제성을 주면 된다... 아예 돌돌이를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거나 돌돌이가 없는 사회를 만든다던가. 그러나 또 이런 작은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이 아이디어로 이어지고 그것이 자본으로 이어지는 이런 사회에서는 강제성이란 경제적 자유를 차단하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집으로 이사하고 짐이 많이 늘었다. 짐 정리를 하며 보니 많이 사용하지도 않은 물건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 기간에 심심함을 달래 보겠다고 산 물건도 많았지만, 굳이 왜 샀는가를 따져보면, 살 수 있었기 때문에 혹은 사도 괜찮기 때문에 산 것들이 많았다. 이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다락과 옷방이 생겨 잉여 공간이 늘었고, 코로나로 인해 나가지 않아 시간이 많았고, 가구 경제에 타격을 줄 만큼 비싼 물건들이 아니었으니 그런 것들을 사들여 공간을 채운 것이다.
옷은... 직업적 특수성이라 변명해 본다. 교사도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는 직업으로, 매일 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너무 더운 여름,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얇은 원피스를 이틀 연속으로 입은 적 있는데 학생 중에 하나가 선생님 어제 집에 안 들어갔냐고 왜 옷이 똑같냐는 소리를 들은 이후 더 그렇게 되었다. 그렇지만 셔츠가 너무 많아 정리를 좀 하긴 했다. 유행을 지난 핏과 색, 패턴을 가진 옷들을 죄다 버리면서 이제는 절대 유행하는 아이템을 사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일종의 허영도 있었다. 내가 이걸 입으면 더 예뻐 보이겠지, 세련되어 보이겠지, 하며 이 옷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착각과 스타일을 뽐내고 싶은 허영. 이 책을 읽으면 나도 더 똑똑한 사람이 되겠지, 이런 책을 가진 사람이 되면 멋지겠다, 하는 지적허영심. 이 접시와 인테리어 소품이 나를 센스 있는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들 것이라는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만들어낸 소비였으려나 싶다.
사실은 마음을 채운 건지도 모르겠다. 허영의 '비우다'가 사실 마음에 생긴 구멍 같은 거 아닐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결핍을 자꾸 물건으로 채우려고 하다 보니 이것저것 사들인 게 아닌가 싶다. 스스로를 제법 미니멀리스트라고 여기고 살았던 세월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하나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사들인 것도 맞다. 처음 MP3 플레이어가 나왔던 시기를 기억한다. 꽤나 비쌌지만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샀고 128MB라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적은 용량으로 아마 25곡쯤 넣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길 때마다 어느 하나는 반드시 지워야 그 노래를 넣을 수 있었기에 언제나 그 당시 최애 25곡을 골라야 했다. 조금은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한 곡을 지우고 새 노래를 넣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강제성이 있을 때는 좋아하는 곡이 많았어도 25곡을 고르고 골라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용량 걱정 없이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고 다운로드할 필요 없이 스트리밍도 할 수 있다. 용량적 제한이 사라진 이후 내 애플 뮤직은 적어도 천 개가 넘은 곡을 저장하고 있다. 비슷한 논리로, 25벌의 옷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더 많은 옷을 사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고 이런 소비를 해야지만 쿨한 인간이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사회에서 물건을 안사기란 쉽지 않은 환경이라 생각하기도...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들어 나한테만 잠깐 필요한 물건을 이웃에게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와인 따개를 빌리려 이웃의 문을 두드리기도 어려워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떠한 공동체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서로 물건을 나눠쓸 수 있다면, 인간은 조금 덜 소비하고 소유하고 생산하고 사용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한다.
뉴욕에서 근 20년을 살아온 시간은 박스 50개가 되어 쌓였다. 남편과 내 짐을 합친 것이고, 또 작은 박스가 대부분이고, 어차피 가서 살꺼면 일단 다 싸고 보자는 생각으로 많이 싸긴 했지만, 쌓인 시간을 물질로 치환하고 보니 너무도 무겁다. 고작 달팽이인 내가 거북이의 등껍질을 지고 가려는 것은 아닐런지. 과거를 털어내지 못하고 잔 뿌리를 쳐내지 못하고 이고지고 가는 것은 아닌지.
대체 나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짙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