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저 청소일 하는데요?》
주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찾아본다. 들쭉날쭉한 프리랜서 수입에 지치거나 일이 없어 수입이 0원으로 수렴할 때쯤(주로 연초다.) 어김없이 아르바이트 중개 플랫폼을 기웃거린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공고를 살펴보다가 금세 마음을 접는다. 지식노동이 아닌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이 인정해주는 일을 해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올해도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버는 일 사이에서 방황하던 중 이십 대에 청소 일을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와 느낀 감정을 일상 만화로 엮은 김예지 작가의 책《저 청소일 하는데요?》(출판사 : 21세기북스)을 만났다.
글.그림 김예지 | 출판사 : 21세기북스 | 발행 : 2019년 2월 7일 | 값 : 14,000원
누가 보기에도 보편적이지 않은 '청소일'은
저에게 보편적이지 않은 '삶'을 선물해줬습니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작가는 대학을 나와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던 중 그림 그리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 작가의 꿈은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 통장잔고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작가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스물일곱 청소 일을 시작했다. 청소라는 노동에 익숙해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지만, 4년 간 청소 일과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일을 병행하며 작가는 생계를 책임질 정도로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는 노동(청소 일),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꿈(일러스트레이터)을 분리하고 이를 병행할 수 있는 노동의 환경을 꾸렸다.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는 4년 간 청소 일을 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작가의 삶의 순간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생계로서의 작업,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4년간의 기록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에 깊게 사유하고 고민한 흔적이 담겨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몇 번이나 문장을 쓰고 지웠다. 책을 다시 펼쳐 읽고, 다시 타이핑을 하고 그대로 썼던 문장을 지우기를 반복했다. 며칠을 그렇게 글을 시작하지 못한 채로 머물렀다. 이렇게 리뷰를 쓰기 힘든 책은 처음이었다. 왜 이 책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책 속에 있는 작가의 많은 순간은 나와 너무도 닮아 있다. 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인지' 고민하느라 바로 답하지 못하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모두 내 이야기 같아 도무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들어왔다. 작가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20대 여성이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청소 일을 시작했다. 청소 일이 없을 때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청소 일을 하는 20대로 살아가는 순간마다 작가는 깊게 사유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청소를 하는 나와 그림을 그리는 나. "무슨 일 하세요?" 라는 질문은 선택권을 준다. 설명이 필요한 직업(청소일)과 설명은 필요 없지만, 확실하지 않은 직업(일러스트레이터). 그래서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한다. "청소 일로 돈 벌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자아실현합니다." 요즘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결론적으로 청소 일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죠.
- 06 그래서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꿈이 꼭 직업이어야 하나요?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 시절 '꿈이 무엇이냐', 다시 말해 '너의 자아실현을 위해 어떤 직업을 찾을 것이냐?'는 질문을 통해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도록 배운다. 그 결과 자아실현을 위해 꿈을 좇다 고꾸라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꿈이 없는' 자신을 초라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직업은 내가 곧 꿈꿔오던 미래의 산물이 된다. 그래서 생각지도 않던 직업이라든지,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직업을 홀대할 떄가 있다. 스스로를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라고 만들 때도 있는 것 같다. 꿈은 단순한 이상과 희망일 뿐인데... 원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생계를 담당한다든지 안정을 담당하고 있는 직업이라도 가치 있는 노동이란 건 변함이 없다. 꿈의 카테고리 안에 작은 부분일 뿐 다른 부분들로도 꿈은 충분히 채워질 수 있다.
- 28. 꿈과 직업의 상관관계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서 작가는 꿈이 꼭 직업일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 반대로 직업으로 꼭 자아실현을 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꿈과 직업을 하나로 동일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얼마든지 돈을 버는 직업과 자아실현을 하는 직업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직업에 대한 관점의 변화가 작가에게 생계와 꿈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직업을 갖는 이유는 생계, 자아실현, 사회봉사와 같이 다양해진다. 꿈을 채울 수 있는 요소도 다양하다 건강, 취미, 가족 등 삶의 직업이 아닌 요소로도 꿈이라는 주머니를 채울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작가는 책을 통해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작가는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서 청소 일을 하는 이십 대 여성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데에 대한 불안함과 패배감으로 고민했던 순간을 고백한다. 그리고 힘든 감정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들도 보여준다.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것. 결국 인생의 책임자는 나다. 그리고 각자 조금은 다르다는 걸, 정해진 길이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이렇게 조금씩 달라야 재밌는 거 아닐까?
- 39. 우리는 다 다르게 살아간다.
책에서 작가가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뭉클한 감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주 작은 용기가 샘솟는다. '저처럼 이렇게 살아보세요!'라는 강한 어조가 아닌 '저의 삶은 이랬어요.'라고 진정성 있게 고백하는 어조의 이야기는 더욱 진하게 독자의 마음에 와 닿는다.
사유를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루를 견딜 힘이 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니 그림과 텍스트로만 작가를 만났지만, 나는 작가가 하루를 굳게 견딜 힘이 있는 단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느꼈다.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에는 청소일을 하는 일상이 자주 등장한다. 내용을 읽으면 분명 쉽지 않은 일인데도 작가의 만화로 보면 유쾌하거나 덤덤하다. 작가는 청소 일을 하는 순간에 사유를 멈추지 않고 일상의 추억이든 깨달음이든 무엇이든 얻고 만다. 그리고 힘든 고민의 끝에서 스스로를 잘 다독일 줄 안다.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 저는 이기지 못했어요. 이겼다기보단 견뎠어요. 마음으로 이기고 싶었지만 사실 이기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신경은 쓰였지만 견뎠던 것 같아요.아니라고 말한다고 정말 신경 안 쓰이는 게 아니란 걸 여러 번 겪으면서 말이죠. 근데 어떡해? 난 계속하고 싶은걸. 그래서 전 이김보다 견딤을 택했어요. 이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선택을, 하지만 이기질 못한다면 자신의 판단에 믿음을 가지고 견뎌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쨌든 결론적으로! 시선 때문에 포기하진 마세요!
- 121.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
어쩌면 지속가능한 프리랜싱의 교과서 같은 삶 아닐까?
특히 이 책을 프리랜서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다. 프리랜서의 가장 큰 화두는 '지속가능함'일 것이다. 작가는 고정적으로 안정된 수입을 가져다주는 청소 일을 함으로써 프리랜서로서 드문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매달 고정수익이 있으므로 이번 달에 프리랜서로 일이 없다고 해서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한 푼이 아쉬워서 제대로 노동의 값을 쳐주지 않는 일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과 받아야 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클라이언트와 일할 수 있는 자유, 그건 작가가 청소 일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듣는 흔한 질문들 중 하나. '아직도 청소 일을 하시나요?' 혹은 단정지어 말할 때도 있다. '저는 그만두신 줄 알았어요.' 책을 낸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내 생계 터전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중요한 일이며 안정감을 주는 직업이다. (다음 독립 서적은 어떤 종이를 써볼까? 수입이 안정적이라 선태의 폭이 넓어 좋다.) 그렇기 떄문에 여전히 나는 청소 일을 하고 있고, 어떠한 안전장치를 가질 때까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다. 청소 일은 소중한 나의 직업이랍니다.
- 59. 저는 아직 하고 있어요.
프롤로그
01 월·수·금 시간표
02 계절
03 그렇지만 어른인걸요? 1
04 이 일을 하게 된 이유
05 가끔은 내가 제일 가혹하다
06 그래서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07 괜찮은 척
08 근데 틀린 말 같진 않네
09 노동가
10 도망가고 싶은 마음
11 꿈을 꾸는 젊은이 1
12 꿈을 꾸는 젊은이 2
13 마음이 아팠다
14 그래서 이 일을 하고 있다
15 그렇게 얻은 것들
16 내가 그렇게 궁금하니? 1
17 무슨 일 하세요? 1
18 무슨 일 하세요? 2
19 청소 일을 알려주마!
20 신기하네?
21 꽃 같은 새댁
22 직장동료
23 이중생활
24 쏘울 - 푸드
25 아프지 마요
26 엄마는 꿈이 뭐야?
27 선택과 강요의 차이
28 꿈과 직업의 상관관계
29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30 나 자신의 위로
31 그래도 꾸준히 실천했다
32 글로벌 고민
33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나요?
34 돈으로 살 수 없는 감정들
35 당신에게 배웠다 1
36 당신에게 배웠다 2
37 불투명에 가까운
38 선택의 기로
39 우리는 다 다르게 살아간다
40 고민을 비교하지 마
41 명함의 힘 1
42 명함의 힘 2
43 왈 - 콱
44 분리수거 세상 1
45 분리수거 세상 2
46 벌이는 좀 괜찮나요?
47 비염인가?
48 디스전 feat. 돈 떼먹은 당신
49 어른의 단어 3종 SET
50 책을 선택한 진짜 이유
51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
52 사람의 마음이란
53 메일이 왔다
54 내가 그렇게 궁금하니? 2
55 기억에 남는 질문들
56 어른이 된 것 같아
57 작업실이 생겼다
58 장래희망
59 저는 아직 하고 있어요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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