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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Jan 29. 2020

자유롭지 못한 작업실 체험기

전시장 지킴이 두달 체험을 바탕으로

작업실을 꿈꾼 적 있다. 아니 프리랜서로 살며 꾸준히 주기적으로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널찍한 책상과 편한 의자, 넘치는 책을 수납하고도 남을 큰 책장이 있는 곳. 여기에 종류별로 차와 커피가 있어 필요할 때마다 원하는 음료를 즐길 수 있고, 식사 때가 되면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작은 주방도 있으면 좋다. 완전한 고요를 즐기는 편은 아니므로 작업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공기에 잔잔하게 채워줄 블루투스 스피커도 있어야 하고, 책상을 비추는 조명과 공간을 비추는 간접조명이 서너 개 정도 있으면 좋다. 작업실이 있으면, 하루의 루틴을 잘 지켜갈 수 있을 것 같다. 정해진 시간에 작업실에 출근해 저녁 즈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일과 멀어지는 삶. 물리적인 공간의 구분으로 일과 삶을 적절히 분리하는 그런 삶 말이다. 


11월 말부터 1월 말까지, 나에게는 이런 꿈 같은 작업실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업실이 아니라 내가 기획한 전시의 전시장이지만, 어쨌든 하루에 한두 명이 올까 말까 한 전시장은 고요한 나만의 작업실로 충분했다. 전시장의 두 면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2미터가 넘는 큼직한 창으로, 다른 두 면은 비슷한 높이의 붙박이 책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해가 나는 날에는 난방을 하지 않아도 따뜻할 정도로 햇빛이 풍성하게 공간을 채운다. 


빛이 가득 들어오는 날이면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전시장을 오픈하고 얼마간은 조용한 나만의 작업실이 생긴 것 같아 들떴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시장에 출근해 불을 켜고 물을 끓인다.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글을 쓰거나 그날그날 할 일을 하다 보면 가끔 한 명씩 전시장에 찾아왔다. 도슨트가 있는 전시도 아니고, 어차피 전시 관람이란 홀로 고요하게 작품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므로 관람객이 와도 나는 조용히 내 자리를 지키면 되는 일이었다. 

전시장에 한 눈에 들어오는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 가끔 책과 아트상품을 팔았다. 


커피 한 잔으로 서너 시간 테이블과 의자를 대여하는 카페와 달리, 하루를 통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 전시장은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자유와 권리가 조금 더 확보되는 곳이다. 전시가 끝날때 까지는 일시적일지라도 나는 공간의 소유자이고, 동시에 이 공간에서 이뤄지는 행위의 규칙을 내가 정할 수 있다. 카페가 주요 작업 공간이던 프리랜서에게 가장 결핍된 행위는 무엇보다 먹는 행위다. 


음료와 다과를 판매하는 업장인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구매하고 그 대가로 맛있는 커피와 잠시간의 머무름이 허락되는 카페 손님의 위치에서 무언가 먹는 행위는 통제 당해야 마땅한 행위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베이글, 샌드위치, 쿠키 등 몇 종류의 음식을 사먹는 방법 외에는 배를 채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보통은 머핀 하나, 베이글 하나로 끼니를 떼우거나 노트북을 정리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커피값을 내는 것을 반복했다. 

어느 날의 디저트 타임


먹는 행위를 자유롭게 해도 좋은 전시장에서 일한 후부터 내 식단은 꽤 다양해졌다. 토스트, 샌드위치, 스프, 샐러드 등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부터 거하게는 라면까지(전시장으로 쓰는 공간은 작은 복도를 두고 두 개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데, 전시장으로 쓰지 않는 공간에 큼직한 주방이 있고, 다행히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음식 냄새가 전시장까지 침범하지 않는다.) 독립된 공간에서 내가 기획한 전시의 풍경을 앞에 두고 일하며, 사 먹는 것보다 저렴한 값으로 원하는 식단의 식사를 하는 것까지. 두 달짜리 작업실에서 나는 작업 효율 증대와 비용(대체로 식대)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프리랜서의 ‘프리’한 것들 중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하나의 가치를 상기했다. 프리랜서에게는 저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씩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도 프리랜서마다 하나씩의 허들이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일하는 공간의 자유다. 의무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매일 똑같은 공간에 가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장점일 수 있지만 내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하루의 컨디션에 따라, 일하는 종류에 따라 집과 카페, 코워킹 스페이스 등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일할 수 있다는 일하는 공간의 자유는 내 전두엽을 자극하고 늘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하는 동력같은 것이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을 벗어날 수 없는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소모적인 약속이 되었다. 


“자영업자가 된다는 건 ‘일한 만큼 버는 것’도 ‘적은 돈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가게를 꾸미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정성 들여 내가 갇힐 감옥을 짓는 것과 같았다. 설사 그것이 아름다운 감옥일지라도 말이다.” - '나도 카페나 해볼까?'의 최후입니다, 오마이뉴스, 박초롱


그렇다. 이상적으로 느껴졌던 나의 작업실은 사실 공간을 비울 ‘자유’가 결여된, 내가 만든 아름다운 감옥이었다. 전시장이라는 아름다운 감옥에서 고요함은 숨 막힘으로 잔잔한 음악은 지긋지긋한 소음으로 그리고 규칙적인 하루의 루틴은 강제된 속박으로 바뀌었다. 두 달밖에 있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은 하루빨리 마지막 날이 오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달력에 한 칸씩 줄을 긋고 있었다. 내 취향에 맞는 작업실이자 적당한 수익을 만들어내는 공간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과 의무적으로 있어야 하는 공간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진다. 


두 달간 운신의 자유가 결여된 작업실에서 일하며 내게 필요한 작업실의 요건을 다시 다듬었다. 편한 책상과 의자, 큼직한 책장과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 볕이 잘 드는 공간 여기에 물리적인 요건보다 더 중요한 내가 일하고 싶을 때만 있어도 되는 자유로운 공간. 아마도 "카페나 서점을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일하면 좋지 않을까?" 라는 소리는 이제 안할 것 같다.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프리랜서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계신 분들께는 프리랜서의 고단함을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두려워하는 분들께는 생각보다 괜찮은 프리랜서의 삶을 보여드릴게요. (변태 아니에요. 해치지 않아요..)

업데이트 일정은 클라이언트가 일을 많이 주지 않아서 그나마 조금 시간이 날 때..입니다. 

여러분의 공유와 댓글이 다음 편을 약속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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