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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Feb 12. 2020

직장인과 사뭇 다른 프리랜서의 하루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것, 내 하루의 규칙을 만드는 것

프리랜서는 하루를 나에게 맞게 설계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다. 몇 시에 일어나 언제 밥을 먹고 일을 시작할지 선택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업무 요청이나 연락이 올 때도 있지만, 대체로 직장인에 비해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실행할 자유와 주체성이 있다. 나의 하루를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지만, 반대로 프리랜서 스스로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아주 쉽게 방탕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이 없으니, 일이 많지 않은 날에는 한없이 늘어지거나, 일이 많은 날에는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온종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불규칙한 삶은 몸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해롭다. 그래서 건강하게 오래 프리랜서로 일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하루의 루틴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의 시작, 시동 걸기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팟캐스트를 같이 진행하는 정만춘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메일과 카톡, 문자 등에 답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래서 늘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쉬는 인간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시동을 거는 시간과 의식이 필요하다. 준비 운동 없이 수영을 하거나, 예열 없이 빵을 굽는 다면 다리에 쥐가 나거나 충분히 부풀지 않는 빵을 먹게 될 것이다. 직장인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의 출근 시간을 보내며 직장인으로서 하루에 시동을 건다. 프리랜서도 하루의 시동 걸기가 필요하다. 시동을 거는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다. 특히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쉬는 공간에서 일하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쉬는 인간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의식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침 8시 30분쯤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고구마, 사과, 토스트, 토마토 등 염분이 적고 탄수화물 함량이 적은 아침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첫 끼니부터 탄수화물과 염분이 많은 식사를 하면 집중이 되지 않고 바로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샤워를 한다.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온 몸을 닦아내는 행위를 통해 나는 쉬는 인간으로서의 게으름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려고 노력한다. 샤워를 하며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도 하고, 막혔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샤워 후 머리를 자연바람에 말리며 설거지를 한다. 최근에 싱크대와 주방이 깔끔하지 않으면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에너지를 소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끼니를 준비할 때 개수대에 더러운 식기와 컵이 쌓여 있으면, 식사 준비 자체가 귀찮아진다. 뽀송한 다음 끼니를 위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간단히 집을 정리하고 고양이 밥과 물을 교체하고, 화장실을 치운다. 아침식사, 샤워, 집 정리까지 마치면 열 시가 된다. 출근 시간이다. 



오전, 글쓰기


앞서 말했듯이 쉬는 인간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이동하는 최고의 의식은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다. 집에서는 도저히 쉬는 인간의 모습을 지우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주로 집이 아닌 코워킹 스페이스나 카페에서 일한다. 


집이 아닌 곳에서 일할 때는 이동시간이 짧은, 비교적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한다. 정해진 공간에 출근할 의무가 없으니 어딘가로 이동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주다움 프로그램으로 제주에 체류할 때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피로감을 덜 느끼며 일에 더 집중하는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사업 담당자는 이번 참여자는 물론 다른 달에 참여한 사람들도 서울에서 일했을 때보다 덜 피로하고 일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동시간에 있었다. 최소 삼십 분, 길게는 한 시간 반 정도를 사람으로 가득 찬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개인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상당량의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체류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할 때는 일하는 공간과 걸어서 10분 거리 숙소에 지내며, 사람에 치이지 않고 여유롭게 출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동에 에너지를 덜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주에 살며 주로 일하러 가는 곳은 에이바우트(A’Bout)라는 커피 프랜차이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차로 3분 거리에 있으며, 커피가 2,5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고 제값의 맛을 한다. 카페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공간과 좌석 설계가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파 자리, 개인 작업자가 일하기 편하며 콘센트가 넉넉한 자리가 적당히 배분되어 있어, 자리만 잘 찾아서 앉으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일할 수 있다. 여기에 10시 전에 가면 모닝 할인으로 아메리카노가 천사백 원이다. 가벼운 지갑이 흥겨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다양한 카페를 돌아다녔다. 프리랜서 초기때보다 지금은 스타벅스, 에이바우트같은 안전한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카페에 출근하면 비로소 노동하는 인간의 하루가 시작된다. 메일과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바로 회신이 필요한 메시지나 메일에 답을 하고 파일을 보내거나 아주 간단하게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해결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작년을 기준으로 보면, 내가 하는 일의 40% 정도는 글쓰기다. 나머지 60%는 기획에 수반되는 커뮤니케이션, 서류 작업, 때때로 간단한 디자인 작업 그리고 팟캐스트 오디오 편집 일 등이다. 프리랜서 7년 차에 내가 깨달은 것이라면, 내 컨디션과 하루의 시간에 따라 잘 되는 일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글이 가장 잘 써지는 때는 점심식사를 먹기 전까지다. 다른 일로 뇌가 복잡해지기 전, 가장 깨끗한 상태의 뇌를 유지하는 오전 시간에 외주 혹은 내 글의 초고를 쓴다. 




오후, 간단한 점심 그리고 일


한시쯤 점심을 먹는다. 바쁠 때는 단백질 바 혹은 푸드 셰이크로 점심을 때운다. 시간이 좀 나면 그래도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럴 때도 김밥이나 샌드위치처럼 비교적 저렴하며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그리고 섬유질이 골고루 섞인 메뉴를 선호한다. 나에게 일하는 하루에 먹는 점심이란 생존을 위한 끼니 같은 것이라 굳이 비싸고 성대한 만찬을 즐기지 않는다. 염분은 내가 조심하는 것 중 하나인데, 염분이 많은 식사일수록 식사 후에 뇌가 멍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생존을 위한 점심을 먹으며 음식을 오물거릴 때면 늘 생각한다. 이럴 때는 정말 알약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싶다고. 충분히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으며 적당한 맛과 포만감을 주는 알약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바로 주식을 살 것이다. 진심으로.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카페로 간다. 오후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따뜻한 커피보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더욱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오후 업무는 그날 꼭 끝내야 하는 일부터 처리한다. 그때그때 다르다. 하루 종일 글을 써야 할 때도 있고, 기획안을 쓸 때도 있다. 계속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미팅이 있는 날도 있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3일 정도 미팅이 있다. 한가할 때는 일주일에 한 건 정도.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습관이 들기 전에는 오전 10시, 11시에 미팅을 잡아 강제로 오전부터 일했다. 오전에 일하는 습관을 들인 후부터는 오후 2시나 오후 5시 미팅을 선호한다. 오후 2시는 점심을 먹은 직후라 졸려서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시간인데, 미팅을 하게 되면 강제로 또렷한 정신을 유지해서 좋다. 오후 5시 미팅은 충분히 오늘의 일을 처리한 후 저녁식사 시간 전에 미팅을 할 수 있어서 버리는 시간이 없다. 오후 3시, 4시 미팅을 하면 오후가 통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이동시간, 준비시간, 마무리시간까지 합하면 오후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여서 어떤 일도 제대로 끝내기 어렵다. 


저녁, 휴식과 노동이 함께하는 시간


오후 4시쯤부터 조금씩 허기가 들고 6시쯤 되면 슬슬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는 과감히 일을 접어야 한다. 어차피 일이 안된다. 6시쯤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테이크아웃하거나, 식당에서 먹는다. 아니면 집에 와서 저녁을 해 먹는다. 저녁 먹은 후 일을 더 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 맛있는 걸 먹는다. 하루 중 가장 마음 편히 집중력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저녁식사다. 때문에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저녁 식사 후 일을 더 해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너무 푸짐하지 않게 탄수화물이나 염분이 과하게 포함되지 않은 메뉴를 선택한다. 물론 실패할 때도 많다. 갑자기 라면이나 햄버거, 분식류가 당길 때도 많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고양이와 잠시 놀아주고 넷플릭스를 본다. 일이 많을 때는 저녁에 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끝내야 할 일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서 저녁 아홉 시쯤 다시 책상에 앉는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뇌는 이미 피곤하다. 그래서 저녁에는 되도록 많이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처리한다. 송금을 하거나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엑셀에 무언가를 정리하는 일들. 내게는 이런 일이 에너지를 조금만 소모하는 일이다. 그리고 저녁에 일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울하므로, 미드를 보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휴식과 노동이 함께하는 시간. 


일하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단체로 항의한다. 언제 일 끝내냐고


한참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마무리된다. 아주 바쁠 때가 아니면 열한 시에는 컴퓨터를 끈다. 수년간 경험을 바탕으로 새벽 2시를 기점으로 일하는 상태가 주는 스트레스가 지수함수 그래프 수준으로 급격하게 증가한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위통이 올 때도 있다. 정신과 몸의 건강을 위해 되도록 열한 시, 너무 바쁘면 새벽 한 시에는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적당한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퇴근 후에 두 시간은 정말 마음껏 빈둥거려야 불만 없이 평온하게 잠들 수 있다. 열한 시에 일을 끝내면 한 시, 열두 시에 끝내면 새벽 두 시는 되어야 비로소 잠들어도 억울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치 식사 후에 잠들기까지 네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일을 마친 후 잠들기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되도록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수면을 위해 좋다. 


서로 다른 하루가 켜켜이 쌓여 삶이 채워진다. 


어떤 하루는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하루는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삶의 색채를 만들어낸다.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짧다면 짧은, 다채롭거나 무미건조한 내 하루의 모습을 살피며 나는 나를 위한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반문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이는 하루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으로 가는 과정으로서 충분한 것인지 점검해본다. 


지금 말한 나의 하루 일과는 일과 휴식 그리고 일상의 균형을 위해 조금씩 만들어간 나의 규칙이 정돈된 결과다. 언제 일어나고 밥을 먹고 잠드는지, 일의 종류에 따라 나에게 최적화된 업무 시간은 언제인지 파악하고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백번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 물론 매일 지켜지기는 어렵다. 즉흥적인 성격 탓에 일주일에 삼일이라도 제대로 지키면 용할 정도다. 그래도 내 하루의 베이스는 이렇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과 아닌 채로 살아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나에게 맞는 충분한 하루를 보내며 그 하루를 켜켜이 쌓아가는 것은 1년, 5년, 10년 후의 내 삶에 분명히 어떤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므로. 


자유롭게 하루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 프리랜서의 또 다른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프리랜서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고 계신 분들께는 프리랜서의 고단함을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두려워하는 분들께는 생각보다 괜찮은 프리랜서의 삶을 보여드릴게요. (변태 아니에요. 해치지 않아요..)

업데이트 일정은 클라이언트가 일을 많이 주지 않아서 그나마 조금 시간이 날 때..입니다. 

여러분의 공유와 댓글이 다음 편을 약속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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