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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혜 Feb 20. 2020

프리랜서의 작업원칙

지속 가능한 프리랜싱을 위하여

올해 초, 매거진 <딴짓>의 초롱씨와 공동 진행하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메일로 한 청취자가 방송 소재를 보냈다. 프리랜서는 곧 스스로가 브랜드이자 회사인 만큼 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회사의 경영원칙처럼 자기만의 작업 원칙이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프리랜서마다 각자의 작업 원칙이 있다. 일의 능률을 올리고,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는 각자에게 맞는 저마다의 원칙을 정교하게 다듬는다. 


프리랜서 7년 차, 만으로 6년을 스무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나 역시 나름대로 원칙을 만들고 다듬었다. 아주 당연하지만 원칙이라고 명명하며 더 선명하게 지키게 된 것도 있고, 일하며 처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노하우 같은 원칙도 있다. 






오프라인 미팅 한 번은 꼭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오프라인 미팅을 꼭 한다. 보통 킥오프 미팅이라고 표현하는데, 면대면 미팅을 통해 전체 프로젝트의 의의와 방향성, R&R(역할과 책임), 그리고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한다. 메일, 문자, 전화 등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전하지 못하는 메시지가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전해진다. 


규모에 따라 여러 번 오프라인 미팅을 할 때도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 1차 결과물 도출, 최종 결과물 도출 시점에 미팅을 통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체크한다.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클라이언트와 내 생각의 싱크를 맞추고 나면 결과물이 나왔을 때 수정하거나 변경할 사항이 확연히 줄어든다. 



프로젝트에 세부 태스크를 정리하고, 프로젝트 마감일을 기준으로 역산해서 일을 설계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해당 프로젝트 이름의 스프레드시트 파일을 생성한다. 스프레드시트에 진척도 체크리스트, 프로세스, 컨택포인트와 일정표를 만든다. 프로세스 별 소요 기간을 계산하고, 프로젝트 마감을 기준으로 역산해서 체크리스트의 세부 마감을 정한다. 글 하나를 쓰더라도 자료조사와 섭외, 취재, 구성안 작성, 원고 마감, 초고 공유 및 수정사항 반영, 최종 마감과 같이 세부 태스크의 소요시간과 마감일을 정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어 일정대로 딱 맞게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마감일을 역산해서 프로젝트를 설계하면, 막판에 닥쳐서 모든 일을 끝내야 하는 불상사를 막아준다. 프로젝트 세부 태스크를 하나씩 끝내고 보면 어느새 완성품이 만들어지는 기쁨은 덤이다. 



충분히 자고 하루 세 끼를 잘 챙겨 먹는다.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의 프리랜서 작업 원칙 녹음을 할 때 공동 진행자인 초롱씨와 각자 작업 원칙을 방송 구성안에 적었는데, 내 작업 원칙에서 세 번째로 적은 것이 바로 ‘잠은 잔다.’라는 원칙이었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에게 정해진 시간에 잘 자고 잘 먹는 것은 생각보다 지켜지기 어려운 원칙이다. 사실 직장인도 출퇴근 시간이 있으니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아닐까? 열역학 제2법칙을 기억하는지. 우주의 엔트로피는 늘 증가한다는 물리 법칙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규칙에서 불규칙함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의 진리가 말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것은 규칙이 아니라 불규칙이라고. 그러니까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양만큼 정확한 시간에 먹는 것은 노력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이다. 


프리랜서가 하나의 사업체라면 내 몸은 생산하는 노동자이자 기계이며, 내 정신은 사업체가 잘 운영되도록 만드는 가장 정교한 시스템이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다. 공장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기계의 감가상각을 늦춰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처럼, 프리랜서도 꾸준한 운동과 생활 습관으로 감가상각을 최대한 늦춰야 오래오래 일하며 살 수 있다고. 또한, 프리랜서에게는 또렷한 정신 그 자체가 경영 시스템이므로 몸 건강과 함께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몸과 정신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의 기본 중 기본이 규칙적인 수면과 식습관이다. 그래서 하루에 8시간은 꼭 자려고 노력한다. 일이 많아도 6시간은 꼭 잔다. 아무튼 철야는 하지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은 간단하게라도 꼭 먹는다. 회사를 다닐 때부터 굶고 일하면 집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우울해진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먹는 일조차 못하면 일은 해서 무엇하나? 



퀄리티보다 마감이 우선이다. 


아주 낮은 퀄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시크릿코드 같은 디테일을 챙긴다고 마감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완벽하지만 마감을 지키지 않는 프리랜서와 적당한 퀄리티에 마감을 칼같이 지키는 프리랜서 중에 클라이언트는 어떤 프리랜서를 선호할까? 당연히 후자다. 어차피 완벽은 없다. 완벽해도 그 완벽함을 이해하는 사람은 프리랜서 자신뿐이다.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방향성과 퀄리티의 적정 수준만 맞춘다면, 클라이언트는 완벽함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일정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완벽을 추구했다고 해도, 내 실력에 관계없이 수정사항은 발생한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방향과 클라이언트 관점에서 완벽한 결과물은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사전에 커뮤니케이션을 했어도 기본적으로 뇌가 다른 타인이다. 결과물을 공유하기 전까지 이 결과물이 훌륭한 결과물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초안이라는 단어를 쓴다. 마감에 지켜서 초안을 공유하고 클라이언트에게 맞는 방향으로 점점 다듬어가는 것이 가장 완벽하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마감을 도저히 지키기 어려울 땐 연락을 피하는 게 아니라 연락을 해야 한다. 사정을 설명하고 마감을 조정한다. 대체로 일을 줄 때 정말 딱 그날 주지 않으면 망하는 날을 마감일로 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 사니까. 예측 불가능한 그 어떤 사건에 프리랜서가 도저히 마감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들어간다.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그럼 충분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은 마감을 조정하는 것이 마감일이 지나도 감감무소식 상태로 프리랜서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보다 덜 힘들다. 



너무 낮은 페이로 일을 요청할 때는 명확하게 ‘페이가 낮음’을 이유로 거절한다. 


프리랜서로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나에게 일을 준다는 사실만으로 기쁜 나머지 페이에 관계없이 일을 수락했다. 그 결과는 저임금의 굴레였다. 이상하게 쉬지 않고 일하지만, 버는 수준은 고만고만한 것이다. 어떤 일은 정말 시간당 최저임금도 안될 정도였다. 나만 힘들면 상관없다. 다시는 안 하면 되니까. 문제는 업계 단가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대행업체나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다음번에 예산을 올려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거봐, 이 돈으로도 되잖아.’라고 생각한다. 하여 낮은 페이로 일해주는 프리랜서가 계속 있다면, 해당 일의 페이는 절대 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그래서 일을 거절할 때 ‘페이가 낮음’을 이유로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돈 얘기가 껄끄러워 ‘여유가 없어서’,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등의 편한 이유로 거절을 하면 일을 주는 주체는 정말 그렇게 믿는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예산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맞다. 그게 프리랜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연대의 방식이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고려한다. 


한 달에 50만 원을 주는 일이 있었다. 모 회사의 홍보용 카드 뉴스를 만드는 일이었다. 제작할 콘텐츠 수가 적어 수락했는데,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간과했다. 아주 간단한 단 건의 원고 청탁은 제외하고, 기획일이라면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상당히 들어간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프로젝트 관련하여 클라이언트, 관련 실무자 및 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과 에너지다. 오프라인 미팅은 물론 의사결정을 위해 오가야 하는 메일과 메시지, 전화 통화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고려하면 한 달에 외주비 50만 원은 깔고 시작해야 수지가 맞는다. 그래서 기획과 커뮤니케이션이 들어가는 일은 월 최소 100만 원 이상이 아니면 웬만하면 맡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나만의 작업 방식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계약 때부터 오프라인 미팅 횟수를 제한하거나, 업무시간 외 연락은 자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면 메신저와 같이 간단한 방식으로 소통해 메일을 쓸 에너지와 시간을 아낀다. (물론 파일을 주고받거나 중요한 이슈에 대한 논의라면 메일을 추천한다.) 나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전화통화가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클라이언트가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100% 수용할 수 없겠지만, 내가 편한 방식을 알고 행동하는 것과 끌려가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내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다. 


일이 내가 원하는 대로 수월하게 진행되면 참 좋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내가 짠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누구보다 완벽하고 싶지만, 나도 못하는 게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이슈를 맞닥뜨릴 때 마음속으로 되뇐다. 

‘내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다.’ 


클라이언트든, 대중이든 프리랜서는 내가 만들어낸 작업물로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된다. 종종 작업물에 대한 비판은 나를 향한 비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매거진 <프리낫프리> 창간호를 만들며 몇 번이고 포기할까 생각했다. 내가 만든 매거진이 대중에게 외면받는다면, 혹은 안 좋은 평을 듣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을 보낼 때마다 크게 심호흡한다. ‘수정사항이 많으면 어쩌지?’, ‘리젝 당하면 어쩌지?’, ‘혹시 실수하지 않았겠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불안감에 휩싸인다. 


적당한 긴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과도하게 불안감을 느끼거나 비판을 받을 때마다 나를 향한 공격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다. 이유를 떠나 이번에 그저 한 번 삐걱댔을 뿐이다. 실수를 했다면,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부족한 게 있었다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내 인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 인생이 망하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선선하게 받아들이자.’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며 계속 일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지지하고 위로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보통의 사람이 평생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재화의 총량이 있다고 믿는다. (불로소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돈을 한 번에 버느냐 조금씩 오래오래 버느냐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로또와 연금복권의 차이라고 할까. 아 물론 젊을 때 한 번에 버는 게 제일 좋다. 그러면 투자수익과 부동산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몇 번의 경험으로 내 삶에 불로소득이나 한 번에 일확천금을 벌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오래오래 일 해야 하고, 사실 그렇게 오래 일하는 것이 좋다. 


오래 일하려면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분야에서 찾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늘 그렇지만, 답은 없다. 100명의 프리랜서가 있다면 100가지의 원칙이 있겠지. 다만, 작업 원칙을 서로 공유하면 좋겠다. 노하우를 공유하듯, 작업 원칙을 공유하며 그 안에서 느슨하게 연대하면서. 더 정교하게 나만의 작업 원칙을 설계하고 지속 가능하게 잘 일하는 프리랜서로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 


프리랜서 작업 원칙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에서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http://www.podbbang.com/ch/1773367?e=23392035





질풍노도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며 겪었던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댓글로 소재를 받아요.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자유롭게 댓글을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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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방송 듣기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는 일과 여성, 프리랜서의 이야기를 다루는 팟캐스트입니다. 매거진 <딴짓> 박초롱과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이다혜가 공동 진행합니다. 


Photo by Ali Yah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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