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소리하지마
학창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저의 경우에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에게는 큰 절망이었습니다.
“아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졸업하면 이제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었어? 이 힘든 공부를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고?”
공부는 힘듭니다.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서 무슨 말인지 이해도 잘 되지 않는 글 혹은 수식을 바라보고 외우고 풀이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했더니 시험을 치고 성적까지 매깁니다. 낮은 점수면 선생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했는데 보상은커녕 계속 벌만 받게 됩니다.
우리의 학창 시절에서 ‘공부’는 말 그대로 고문과 같은 것입니다. 과정이 고통스럽고 결과도 고통스러운 최악의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비생산적이니 하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제 독자 통계를 보면 대부분 이미 학업을 끝낸 상태입니다. 교육론에 대해서는 관련된 책을 읽은 적도 거의 없거니와 관심도 별로 없어서 제가 감히 이래라저래라 말할 처지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공부와 배움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따금 제게 삶이 무료하고, 방향을 잃은 것 같고, 내가 왜 사는지, 이 모든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위로도 잘할 줄 모르고 상담과 관련해서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없는데 말이죠.
“너는 책을 많이 읽으니깐 뭔가 답을 알고 있지 않아?”
이런, 책을 많이 읽으면 생기는 몇 가지의 부작용 중 하나였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큰 지혜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입니다.
“어… 흠…”
최대한 시간을 끌며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복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알려주었다면 준비를 좀 했을 텐데 말입니다. 제 머릿속에 떠도는 몇 가지 자기 계발서, 스토아학파 철학서, 실존주의 서적을 필사적으로 뒤적거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한 가지 가치가 떠올랐습니다.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 니체가 말하는 ‘향상심’이 그것입니다.
“뭐라도 하나 배우는 게 어때? 평소 배우고 싶었던 악기라던가, 외국어라던가, 아니면 미술작품이라던가, 스포츠라던가… 아무거나 네가 배우고 싶은 거”
“뭐라도 하나 배우는 게 어때?” 에서부터 이미 질색을 하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어휴 난 공부는 싫어. 시간도 없고. 그리고 난 공부는 질색이야. 고등학생 때 충분히 했고 대학생 때 충분히 했어. 이제는 좀 쉬고 싶어.”
많은 사람이 이러한 반응을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질색팔색을 합니다. 안 좋은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부와 배움은 전혀 다릅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지필 한 ‘생각의 탄생’에서 한 예시가 나옵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대학교를 다니던 때에 ‘존’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존은 기계공학을 포함한 모든 과목에서 늘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모범생이었습니다. 어느 날 존은 오래된 거대한 나무문을 열기 위해 열심히 문을 밀었습니다. 하지만 존은 문의 손잡이가 달려있는 쪽이 아닌 문의 경첩과 가까운 부분을 밀었던 탓에 거대한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존은 친구들이 손쉽게 나무문을 열어버리는 모습을 보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자네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문을 열었지?”
친구들은 대답했습니다.
“바보야. 바로 엊그제 기계공학 수업에서 문과 관련된 물리학을 배웠잖아. 경첩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을 밀어야 문이 쉽게 열리지.”
사실 기계공학 수업에서 문과 관련된 물리학을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기초적인 지렛대의 원리만 알고 있어도, 아니 어렸을 때 시소놀이만 했어도 어느정도 유추해낼 수 있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존은 그 간단한 원리를 꺠닫지 못했습니다. 존은 ‘배움’이 아닌 ‘공부’를 했습니다.
중요한 건 시작입니다. 일단 시작하면 “어? 내가 생각했던 공부랑은 좀 다르네.”하고 깨닫게 될 겁니다. 쉽게 재미를 느끼고 배움에 빠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는 자신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깊게 배워도 좋고 얕게 배워도 좋습니다. 우리는 다 성인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에게 성적을 매기고 평가하고 꾸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배우고 싶은 만큼 배우면 됩니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아니라고요? 그럼 아직 공부와 배움을 완벽히 구분하지 못하는 겁니다.
뭘 배워야 하나요?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약간 긴장하면서 말입니다.
“외국어는 어려운데… 난 음악에 재능이 없어서… 난 체력이 안 좋아서 운동도 좀…”
그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성적을 매기고 꾸중을 하지 않습니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없어도 악기 배울 수 있습니다. 체력이 안 좋아도 운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언어적 재능이 없어도 외국어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 당신은 언어적 재능이 없어서 외국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만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계는 내 머릿속에만 있다.’라는 말이 딱 그런 말입니다.
그럼 어떤 걸 배워야 할까요? ‘자기 효능감’, ‘향상심’ 어려워 보이는 단어지만 사실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멋있어 보이는 걸 배우시면 됩니다. 선글라스 끼고 모닥불 앞에서 기타 치는 게 멋있어 보이시나요? 그럼 기타를 배우시면 됩니다. 유창하게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시나요? 그럼 외국어를 배우시면 됩니다. 자기 효능감과, 향상심은 ‘스스로 멋있어 보이는 나’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 느껴지는 감정이자, ‘스스로 멋있어 보이는 나’에 한걸음 씩 가까워지겠다는 결심을 의미합니다.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유진 초이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총 3개 국어를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 모습이 저는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어공부와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유진 초이처럼 유창하게 3개 국어를 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독일어가 멋있어 보여서 일단 영어와 일어를 어느 정도 하게 되면 다음은 독일어를 배우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는 복싱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상대방의 주먹은 피하고 나의 주먹으로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꽂는 모습, 남자라면 모두 한 번씩은 꿈꾸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복싱 체육관에 등록을 하고 배웠습니다.
어느 날에는 유도와 관련된 만화를 보았습니다. 상대를 화려하게 멘치는 모습에 반해버려 바로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기타 교습소에 등록을 하여 기타를 배우고 집에서 따로 유튜브로 공부하며 결국 그 노래를 기타로 연주했습니다.
어느 날 슬램덩크 극장판을 보고 슬램덩크 주인공들처럼 멋있게 농구를 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농구학원에 등록해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들처럼 멋있는 덩크는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점프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덩크는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득 인체의 근육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해부학을 알려주는 학원이 일단 제가 사는 곳 근처에는 없어서, 인터넷으로 인체해부도와 관련 유튜브 영상, 논문 등을 검색하며 독학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또 세계 2차 대전에 흥미가 생겨서 관련 서적과 논문,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피지크 바디빌딩 1위 크리스 범스테드와 피트니스 인플루언서 데이비드 레이드 같은 멋진 몸을 상상하며 열심히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은 머스업이라는 동작을 하고 싶어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 칼 융의 심리학에 관심이 생겨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라는 물음을 자주 받는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 그렇게 재미없게 살지는 않는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제가 ‘재미없는 삶’을 살면서 어떻게 재미없게 살지 않는지 조금은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루하루가 바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합니다. 물론 낮에 열심히 일상을 살다가 집에 들어오면 그냥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이나 보고 놀고 싶은 욕구가 생깁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루를 보낸 적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닙니다.
몇 시간이나 SNS를 하면서 중간에 “아… 이것만 보고 끄자.” 다짐하신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던가요? 그렇게 한 시간을 더하고, 두 시간을 더하고, 새벽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누워서 핸드폰을 보는 행위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내가 ‘하기 싫어졌을 때’ 멈출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한 행위는 ‘내가 억지로 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를 절대 헷갈리시면 안 됩니다.
마치 어린 시절 억지로 한 공부와 같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게 됩니다. 다만 다른 점은 아주 조금만 공부를 해도, 아주 높은 성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해도 큰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가 의미가 있나요? 책 표지만 펼쳐도 100점을 받는 시험. 그 시험이 과연 의미가 있나요?
“삶이 무료하고, 방향을 잃은 것 같고, 이 모든 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라고 느껴지시나요? 그럼 혹시 본인이 의미 없는 행위만 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합니다. 의미 없는 행동만 하는 인생이 의미가 있을리 없습니다.
배움은 학창시절 저희가 한 공부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세요!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그냥 배우고 싶은걸 배워봅시다!
의미없는 행동은 의미없는 하루를 만듭니다. 의미있는 행동은 의미있는 하루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