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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Oct 01. 2021

불안감과 우울감을 떨쳐내는 법

삶의 의미를 찾는 법


'밤마다 불안함과 우울감이 찾아오는 이유'에서 우리는 불안감과 우울감의 원천을 찾아냈다. 정답과 옳음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추구해야 할 목표를 잃어버렸고, 나침판이 없는 배에 탄 선원처럼 불안에 떨며 망망대해를 방황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다면, 불안감과 우울감을 떨쳐내는 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수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주장하고, 연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생의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나침판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추구해야 할 목표를 세우고 그 목적지를 향해 당당히 항해하는 것이다. 도착까지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일단 목적지로 제대로 가고 있다는 확신만 생기면, 밤마다 불안감과 우울감에 잠을 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초월적 존재의 몰락과 허무주의

'삶의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들은 많지만 그중 키르케고르와 니체가 특히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동시에 각각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니체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물론적 사고로 허무주의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100년 전에 미리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니체의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이런 문장을 썼다. '신은 죽었다'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바로 다음 부분을 모르는 사람은 대부분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아주 유명한 명언의 정확한 문장은, '우리가 신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대들과 내가... 신은 죽었다... 신을 죽인 것은 우리들이다!'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한 신시대를 열면서 말하는 환희와 감격에 가득 찬 모습이 아니다. 신의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질 시대를 걱정하는 모습에 가깝다. 여기서 신은 기독교의 신을 뜻하지만, 동시에 초월적 존재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니체는 초월적 존재의 부재로 인해 허무주의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죽었다'가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니체의 예상은 제대로 적중했다. 하지만 니체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기독교의 이원론적 사고와 지나친 내세의 집중, 그리고 금욕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철학자이다.


니체의 위버멘쉬


니체는 허무주의에 빠질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바로 위버멘쉬(초인)이다. 초인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인간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인간의 (정신적) 한계를 초월한 인간이다. 더욱 쉽게 말하면 호르몬, DNA, 본능, 생물학적 요소를 초월한 인간이다. 초인은 자신의 상황에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향상심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초인은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근거 없는 비판을 하지 않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삶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계속해서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존재는 자기 이상의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초극적인 존재가 되려 하느냐, 아니면, 동물로 퇴화되려고 하는가?". '인생이 허무할 때, 무기력증이 느껴질 때'에서 언급했듯, 유물론적 사고는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내리려고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쾌락, 편리함, 게으름만을 쫒고 '인간도 동물이다'라며 정당화시켜버린다. 심지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헛짓거리 한다'라며 비웃는다. 인간은 이미 동물로 퇴화하는 중인 것이다.


불안감을 없애는 무기, 숭고한 목표의식과 신성한 행위


조금 내용이 복잡해졌다(철학 이야기는 항상 복잡하다). 정리해보자. 100년 전, 니체는 종교의 몰락과 함께 찾아올 허무주의를 예상했고 이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허무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은 밤마다 찾아오는 불안감과 우울감에 시달린다. 니체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초인'이 될 것을 주장했다. 초인은 자신을 동물 '인간'이 아닌, 진정한 인간, 즉 초월한 인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뜻하는 향상심이 초인의 기본이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불안감과 우울감을 벗어나기 위해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 향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더 나은 인간'이란 정확히 뭘까? 바로 숭고한 목표의식과 신성한 행위를 가진 인간이다.


'밤마다 불안함과 우울감이 찾아오는 이유'에서 불안감과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선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 바로 숭고한 목표의식이다. 숭고한 목표의식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넘는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동물들과 차별된 인간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우리는 이제 큰 틀의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정했다. 이제 그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작은 목표들을 세울 차례이다. 이 작은 목표들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책 읽기, 글 쓰기, 운동하기, 선행하기, 용서하기 등이다. 경우에 따라선, 특정 자격증이나, 시험에 합격하는 것, 특정 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또는 금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행동에 옮길 차례이다. 바로 신성한 행위이다. 신성한 행위는 우리가 정한 작은 숭고한 목표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도덕적, 윤리적 사람이 되겠다거나 사소하게는 다이어트, 운동, 책 읽기, 자위행위 멈추기, 원나잇 하지 않기부터 시작될 수 있다. 위 행위들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동물적 본능과 욕구를 절제한다는 것이다.


쾌락주의자는 '우리의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성한 행위의 맹점은 동물의 본능과 욕구를 인간의 이성으로 잠재우는 힘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과 차별된 인간의 삶을 살기 위해선 이 이성은 필수적이다. 니체는 당시 기독교의 과도한 금욕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쾌락주의를 옹호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진 쾌락은 누려야 하지만, 쾌락을 위한 쾌락 행위는 멀리해야 한다.



조금씩, 하지만 꾸준히 바꿔가자



우린 이미 동물로 퇴화해버렸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발톱도, 날개도, 독도 없는 인간이 이성마저 잃어버려, 밤마다 천적에게 잡아 먹힐까 봐 불안감에 덜덜 떤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동물과 같은 삶을 사는 자신을 돌아보며 우울감에 빠진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숭고한 목표의식이라는 나침판과 신성한 행위라는 노를 저어 목적지까지 항해할 수 있다. 단단한 인간성과 날카로운 이성으로 무장한 우리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다. 인간다운 모습, 심지어는 인간을 초월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성취감은 높은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든지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는다. 조금씩 시작하자. 일단, 자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 '그래도 오늘 하루 최소한 이건 했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행동부터 생각해보자. 30분 운동, 산책, 책 1 챕터 읽기, 10분 명상하기 등 쉽게 할 수 있는 것들로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감이 생긴다. 작은 성취감이 모여, 향상된 자존감을 만든다. 이젠 조금 더 멋진 일을 해보자. 침대에 누웠을 때, '내가 이걸 했냈어! 오늘 하루는 알차게 살았군!', 혹은 '아주 잘 살고 있어, 나는 오늘도 발전했고, 내일은 더 발전할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무언가를 배우기'를 추천한다. 예를 들어, 평소 배우고 싶던 악기, 외국어, 운동, 철학, 역사 등이 있다.


'더 나은 인간이 되자'라는 우리의 숭고한 목표에 하루하루 아주 조금이라도, 반 발자국이라도, 반의 반 발자국이라도 가까워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당신은 어제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나은 인간이 될, 초인이 된 것이다. 초인에게 불안감, 우울감, 허무함, 그리고 무기력함 따윈 없다. 나의 숭고한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질 내일을 당당히 마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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