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이구 Sep 24. 2021

인생이 허무할 때, 무기력증이 느껴질 때

유물론과 허무함, 무기력감

위 글을 포함한, 매거진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라'의 글들을 읽으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이 전 글에서 현대인이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 즉 '정답은 없다'의 영향이었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허무함과 무기력은 왜 느껴지는 것일까? 필자는 유물론적 사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유물론자이다. 물론 유물론이라는 것이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그 내용이 심오하지만,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고, 증명 가능한 것만 믿는 철학을 따른다는 부분에서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 유물론적 철학을 수용하고 있다. 대게 유물론적 철학은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과학은 증명 가능한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면 진실인 것이고, 불가능하면 거짓인 것이다.


"과학으로 증명 가능한 사실들을 믿는 게 왜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을 유물론적 사고로 바라볼 때 발생한다. 분류학적으로 인간은 동물계 영장목 사람과 사람 속으로 분류된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시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도 동물의 한 종류라고 인식한다. 이것이랑 무기력, 허무함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욕구에 움직이는, DNA에 따라 움직이는, 호르몬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허무함과 유물론


동물인 인간은 한 여자, 한 남자로 만족을 할 수 없다. 동물인 인간은 살이 찌든 말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다. 동물인 인간은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자위행위를 한다. 동물인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한다. 동물인 인간은 이기적이다. 동물인 인간은 분노를 참지 않는다. 동물인 인간은 쾌락만을 추구한다.


이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인간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야. 어쩔 수 없어"라는 말에 숨겨진 뜻은 "나도 사람이고, 사람도 동물이야. 어쩔 수 없어"이다.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 인간을 동물과 같은 선상에 놓는다. 이런 사고방식은 많은 현대인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다.

괴테는 "인간을 인간 수준으로 보면 더 나빠질 뿐이고, 인간에게 마땅히 해야 할 높은 수준을 정해주면, 자신의 진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목표는 높게 잡아라"라는 말이 있다. 일단 높게 잡으로 최소 보통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 수준으로 봐도 더 나빠진다는데,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보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오직 섹스만, 오직 술만, 오직 마약만, 오직 쾌락만을 쫓아다니는 동물만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인생이 허무하다면,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쾌락을 쫓아다니는 동물의 목표와 의미가 아닌 사람의 초월적인 목표와 의미 말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목표 말이다. 더 나은 동물이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이다. 또한 "사람도 동물이야"라는 것을 당신의 변명거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당장 네 발로 기어 다닐 거 아니면 말이다.


무기력과 유물론

주변에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상하게 나에게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사실은 그 상황이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상황에 영향을 주는 능동적인 인물이 아닌 상황에 영향을 받는 수동적인 인물로 믿는 현상은 우리의 본능이다. '책임회피'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상황이 잘못되었지만 '상황이 이럴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 본능은 너무나 강력해서 나 스스로가 절대적으로 맹신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사실은 그 사람들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책임회피'때문인 경우도 있고, 용기가 없어서인 경우도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어도, 인지시켜주어도, 90%는 실천하지 않는다. 대부분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라는 생각이다.


유물론적 철학을 가진 현대인의 특징 중 하나가 인간, 정확히는 개인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동물의 한 종류로 인식하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커 보인다. 나 같은 개인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집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개인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상황'이라는 것도 개인들의 영향이 서로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관계, 학업능력, 업무능력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내가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주변에서 조언을 얻어보자. 인간관계가 문제라면 사과를 하든, 선물을 사주든, 이야기를 하든, 화해를 하든, 상황에 맞게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될까?"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된다. 어떤 상황이든 바꿀 수 있는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무기력증이 느껴진다면 일단 행동에 옮겨보자. 당신은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있다고 본인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인지를 못하고 있지만, 당신의 뇌가 '책임회피'를 위해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인지하고 본인 스스로를 능동적인 인간으로 인식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