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 행복을 바라는 / 오늘 하루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말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하는 오펜하이머의 예고편을 미션 임파서블을 보러 간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다. 예고편만 보았는데도 벌써 심장이 두근두근 뛰게 되고 하루빨리 오펜하이머를 보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오펜하이머의 다큐멘터리도 보게 되었다.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다룬 작품으로 그의 유년시절, 청년시절, 그리고 노년시절까지 모든 내용을 다룬 2시간 1시간 40분 정도 분량의 다큐멘터리었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오펜하이머는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친숙한 이름일 수도 있다. 바로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무한도전에서 나온 밈 덕분이다.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각자 책을 읽고 쓴 독서감상평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은 하하는 계속해서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감상평 분량을 억지로 늘리려는 모습이 웃겨 시청자의 머릿속에 강하게 박히게 되었다.
로버트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미들네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zEuiCMjqco
로버트는 실제로 많이 좋았을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의 나의 감상평으로는 "아니다"이다. 오펜하이머의 집은 매우 부유했지만, 과잉보호 아래 자란 탓인지, 사회성이 매우 떨어진 아이였다. 오펜하이머는 여름캠프에서 다른 아이들에 의해 홀딱 벗겨진 상태에 초록색 페인트로 온몸이 칠해진 상태로 하루종일 창고에 갇힌 적도 있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또래와의 교류는 별로 없었고 텅 빈 교실에 가만히 서서 혼자 몇 시간 동안 중얼중얼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어느 날은 자살 직전의 모습으로 기숙사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자신의 친구에게 "나는 언제나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감에 사로잡혀서 생각도, 행동도, 소통도, 제대로 못 한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 이후, 국가적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어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전쟁을 종결시키고, 또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가 되는 데에 큰 공을 세운다. 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생긴 전례가 없던 피해에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의 인터뷰에서도 오펜하이머의 큰 죄책감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원자폭탄보다 훨씬 살상력이 강한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한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더 강한 무기를 원했고, 오펜하이머는 결국 정치적 이유로 소련의 스파이라는 모함과 함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국가의 영웅에서 적국의 스파이로 몰락한 것이다.
코미디계의 전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하하의 순순한 초등학생이 쓴 듯한 독서감상평에서는 오펜하이머를 부러워했지만, 오펜하이머의 삶을 자세히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비극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하하의 독서감상평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다. 실제로 오펜하이머의 집은 부유했고 하버드 대학교에도 들어갔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분명 존재했다는 것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누군가 병에 걸려 훈련에서 열외가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병을 걱정하기보다는 '야, 훈련 안 하고 쉬니깐 좋지? 부럽다'라고 말했다. 물론 매우 비꼬는 말투로 말이다. 그 소리를 듣는 병사는 '아파 죽겠는데 꼭 저런 소리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야, 훈련 안 하고 쉬니깐 좋지? 부럽다'이 말을 남이 아닌 본인 스스로에게 해보면 어떨까? 병으로 몸져누운 상태에서 '아파, 죽을 것 같아'라고 계속 본인에게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보다는 '아파, 죽을 것 같아, 아 그래도 훈련은 안 하네, 불행 중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본인에게는 더욱 좋을 것이다. 물론 많이 아프면 '차라리 훈련을 가고 말지!'라고 하겠지만, 그런 상황이더라도 스스로에게 좋은 점을 찾아주는 것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최근 개인적으로 많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흔히 맹장염이라고 불리는 충수염에 걸리게 된 것인데, 문제는 하필 동시에 장염과 코로나까지 함께 걸리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약해진 틈에 이것저것 다 같이 걸린 듯하다. 3일 정도 열이 38.5도 정도까지 올랐는데 고열과 함께 심한 복통도 함께 느껴 정말 죽을 맛이었다. 수술부위에 큰 고통이 있었는데, 그 와중에 설사하고, 무엇보다 기침을 할 때마다 수술부위가 정말 타들어가듯 아팠다. 여러 병을 함께 달고 있어서 그런지 인터넷에서 찾아본 예시들보다 회복도 늦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술 이후에는 정말 우울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지, 이러한 고통이 끝나기는 할지, 그리고 내가 이번주와 그리고 다음 주에 계획한 모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모두 나에겐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입맛이 없었던 탓에 안 그래도 며칠간 거의 굶다시피 하고 곧이어 이어진 수술전후로 금식을 한 상태에서도 한 끼니에 두부 두 조각만 먹는다던가, 죽을 두어 스푼만 먹는다던가 했다. 몸에 기운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곤 누워서 누군가 추천해 준 '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일이었다.
알쓸신잡을 시청하니 우울한 기분이 더욱 우울해졌다. "저들은 저렇게 여행하고 재미나게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왜 나는 병실에 누워서 고통스러워하고 아무 맛도 없는 흰 죽을 먹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런데도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보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에 호기심을 느끼고 나중에 나도 저런 멋진 장소를 여행하리라 하는 소망도 가지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보며 없던 입맛을 돋우았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계속 즐겨 볼 수 있을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입원을 하니깐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도 알게 되었구나" 그래도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곤 계속해서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어차피 걸릴 충수염이었다면, 비교적 젊고 건강한 지금 걸린 것이 다행이다!", "안 그래도 식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기회에 제대로 한번 바꿔보자" 등 남에게 들으면 '이 사람,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대꾸할 생각들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위로가 되고, 또 힘이 되었다.
삶은 멀리서 바라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바라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어쩌면 비극 같은 우리의 삶이 희극 같은 요소들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을지 모른다. 우울한 생애를 보낸 듯한 오펜하이머의 일생도 하하가 보기에는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부러움을 샀듯 말이다.
부정은 우리가 원치 안 해도 찾아오지만, 긍정은 우리가 노력해야 얻어낼 수 있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불행한 모습만 강조되고 반복된다. 그러면 우리는 계속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불행 속 행복을 찾게 되고, 불확실함 속에서 희망을 찾게 된다.
오늘 하루 각자의 일상으로 지쳐있을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그저 부정적으로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자. 그렇다면 내가 그러했듯 분명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위로가 되고, 또 계속해서 살아갈 강한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