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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이구 Dec 02. 2023

고통뿐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통뿐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 위로해 주는 철학

염세주의, 세계는 원래 불합리하여 비애로 가득 찬 곳으로써 행복이나 희열도 덧없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세계관 - 위키백과


세상은 행복한 곳일까? 아니면 고통스러운 곳일까? 이러한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개인마다 생각하기 다르겠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사람은 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은 낙천주의적인 사람보다는 염세주의적인 사람이 훨씬 많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도 말이다.

인류의 전쟁의 역사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실들을 조합해 보면 이 세상이 마냥 아름답고,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언제가 모두 죽는다. 언젠가 죽을 운명이 우리는 그 덧없고 짧은 인생동안 다른 생명을 영양분으로 삼아 섭취한다.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2021년까지는 인류 역사에서 열전(Hot War)은 이제 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제학 책, 국제정세 책, 세계사 책 등 내가 읽은 책들에서도 앞으로 최소 수 십 년간은 국가 간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기 힘들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났고 최근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났다. 이런 것을 보면 인류는 어떻게든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듯 보인다.


위의 예시들같이 대단한 경우가 아니어도, 세상이 고통이라는 근거는 우리 근처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믿었던 친구가 내 험담을 한다거나, 가정 혹은 학교, 심지어는 직장에서 폭력(신체적/정신적)을 당한다거나, 내가 사랑하는 가족, 애인, 친구 등이 세상을 떠나는 등 우리의 삶은 늘 고통 속에 있다.


우리는 인간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사회적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고독,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심지어 평균 수명 또한 낮아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조사에서 스트레스 원인 1위는 인간관계이다. 즉, 우리는 늘 사람에게 상처를 받지만 동시에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 지독한 운명에 갇힌 것이다.


너무 우울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한 신의 징벌인지, 잔혹한 무한경쟁의 유전자 탓인지, 아니면 우주의 섭리가 욕망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났다.

이러한 염세주의로 유명한 철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그 유명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저자이자, 독일의 유명한 염세주의 철학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이 세상을 기본적으로 욕망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인간의 이성마저 욕망을 해결할 도구로써 존재하다는 것이 그의 견지였다. 예를 들어, 배가 고파지면 '식욕'이라는 욕망이 인간의 이성을 사용하여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요리해 먹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이 아닌 욕망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밥을 먹은 인간은 어떻게 될까?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었다면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먹게 되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너무나 맛있었던 음식이 점차 물리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바라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오게 될 것이다. 바로 권태의 시작이다.


이것이 쇼펜하우어가 바라본 인간의 인생이다. 행복의 순간은 찰나이고 결국 우리는 결핍과 권태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이다"라고 묘사했다. (염세주의자 치고 꽤 수사적인 말솜씨이다.)


더하여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를 인간 특유의 상상력과 남과 자신의 비교하는 행위, 그리고 고통에 집중하는 경향 등을 꼽았다. 인간 특유의 상상력이란 앞으로 닥칠 위험에 미리 두려워하며 떠는 경향을 말한다. 한마디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불안해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도 많이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번에 집중할 부분은 바로 고통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평안보다는 고통에 더욱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손가락에 가시가 박혔다고 가정해 보자. 가시가 전체 몸에 차지하는 부분은 1 퍼센트 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는 순간 우리의 모든 신경은 온통 그 가시에 집중을 하게 된다. 나머지 99.9 퍼센트의 건강한 몸에는 신경 쓸 겨를 조차 없다.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홉 가지의 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도 단 한 가지의 일이 잘못되면 우리는 그 잘못된 일에 사로잡혀 우울해지고 불행해진다. 이렇듯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긍정적인 부분, 평안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부정적인, 고통스러운 부분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타고난 비관주의자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생존과 관련되어 있는 우리 몸의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 상처라고 무시하고 지내다가 결국 덧나고 곪고 세균에 감염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과의 작은 마찰도 어쩌면 무리로부터의 추방으로 이어져 생존권을 박탈당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평안과 행복은 우리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기에 무시한다. 오로지 현재 나의 생존에 위협이 될 상황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아가야 할 때이다. 상처가 나면 밴드를 붙이면 되고 사회 구성원과의 마찰이 나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부분에 완전한 무시를 하면 안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거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모든 거대하게 부풀리기를 좋아한다. 천둥번개를 번개의 신 토르가 망치를 휘두르는 소리라고 상상하고 랜덤 하게 흩뿌려져 있는 별들을 이어 사냥꾼, 곰, 전갈, 사자 등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 또한 거대하게 부풀린다. 과도하게 부풀릴수록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기대하고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부풀린다.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마. 저기 저 한 가지, 저게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어. 주어진 평안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 그것들은 신경 안 써도 그 자리에 있을 것들이다. 오로지 저기 저 고통에만 집중해. 빨리 저걸 해결하라고!" 라며 우리에게 속삭인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일수록 우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평안과 행복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스트레스 상황일 때 잘못된 판단을 낳을 확률이 높다. 물론 어느 정도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적절한 수준의 코르티솔을 분비시키고 이는 집중력을 높이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게 도와준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오히려 시야를 좁히고 패닉에 빠지며 지나치게 감정적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평안 와 행복을 인지하여 여유를 되찾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정해진 것은 없다. 명상을 통해, 일기를 통해, 기도를 통해, 산책을 통해, 사색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편안하게 앉아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어 보는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부분은 괜찮아."

"다행히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가 없네"

"이전에 그런 문제가 있었는데 용케 잘 해냈지"

"이러한 것들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잖아. 결국 이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해 낼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만큼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할 수 있어."

우리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정확히는 고통과 권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부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 세상을 우리에게 끊임없는 고통을 선사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우리를 죽일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들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낸다. 니체의 그 유명한 말처럼 말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What doesn't kill me makse me stronger)"


갓 태어났을 땐,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울부짖었던 우리이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조차 하지 않아도 숨을 쉬게 되었다. 세상은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여태 잘 버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이 강한 믿음만이 우리를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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