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4 <전쟁>
글근육 키우기 06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색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붉은색이 보이노라고 말하겠다. 그만큼 하늘이 붉었다. 노을이 져서 붉게 빛나는 게 아니라 염화에 물든 빛이다. 노랗게 여물어가던 노란 밀도 온통 붉었다. 하늘과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부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따라 불씨가 따라다닌다. 바람이 뜨겁다. 아니, 시원한 건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기척이 들어 고개를 드니, 붉게 물든 밀밭 가운데에 한 여인이 있었다. 짧은 머리에 실루엣이 살짝 비치는 레이스 슬립을 입고 서 무방비한 상태로 있었다. 잠결에 집 밖을 뛰쳐나온 것이리라. 여인이 무어라 소리쳤다. 그러나 잘 들리지 않았다. 불씨를 실은 바람은 거세었고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여인의 가는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저 여인을 무시할까? 만약 저 여인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분명 나를 죽이러 올 것이다. 여인에게 있어서, 나는 적이나 마찬가지니까. 죽기 싫다. 그러려면 저 여인을 죽여야 한다. 나는 여인을 향해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주문을 외웠다. 지팡이 끝에서 붉은 새가 뽑아져 나왔다. 새는 여인을 향해 날아갔다. 외마디 비명이 들리더니 이내 밀밭 위로 쓰러졌다. 붉다. 세상이 붉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