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보내며
분절된(이어지는) 두세 덩어리의 계절을 지나 벌써 겨울이고 보기 좋게 흔들리는 건 나무들 뿐인 것 같지만 있는 힘껏 시드는 몸들을 보면 오늘도 이불보를 걷어찰 힘이 생긴다
2024년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장면을 떠올렸을까 궁금해 유년이 까마득하다거나 떠날 생각뿐이었다거나 비참하다거나 여정이 좌절됐다거나 밖에서 주워온 것들을 버리듯이 펼치다가 언 조각에 피가 철철 났다거나 상한 우유처럼 흐물거렸다거나 수상한 숙제에 쓰러졌다거나 하품을 한참이나 삼키다 서로의 것을 훔쳐먹고 거대해진 절망을 마주했다거나 누운 채로 얼굴을 오려서 벽에 붙히다가 울음이 터졌다거나
이런 것들만 생각이 난다
나는 너무 힘들었어
잘못 내린 기분에 걷는 일을 멈추고 싶었는데
무작정 탄 버스에서 내린 그 어느 곳도 돌아갈 곳이 못 되어서
그러나 우리는 지금 같이 있고 오후는 상냥할거고 음식은 따뜻할거고 서로의 얼굴이 첨벙거릴거고 웃음을 오래 입안에서 굴릴거야 찬바람에 불현듯 다시 살고 싶어질 수도 적어도 오늘은 노을이 웃는대로 살겠다는 새 다짐을 할 수 있을거야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사랑한다고 쓰고 싶다
우리를 부르는 ( )라는 말이 아직 너무너무 어색하지만, ( )가, 우리가 쓰지 않은 것들에, 곳들에, 공백이라 생각했던 시공간에 또 얼마나 많은 비명과 탄성이 존재할지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여전히 부지런히 상상해야겠지... 상상 속에 있는 모두가 평화로운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어 불가능하겠지만 연말이 되니 이런 낙관을 포장해보기도 해
가끔씩 오래 보자
새해 복 많이 받고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