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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소소한 침범과 연대의 흔적들을 견고하게

뒤늦은 <쇼잉 업>을 보고

by 이다 Mar 06. 2025

미래는 자꾸 정체되고 - 그러니까 낯선 곳에서 얼마나 오래일지 모른 채로 정차하다가 또 예고도 없이 서서히 뒤로 걷는 듯 전진하는데 - 들이받고 싶은 걸로 가득한 버스를 타고 나는 가만히 앉아 달리기만 했다. 시를 쓰던 일이 까마득하고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눈 뜨자마자 하고 싶다는 마음이 꼭 내일처럼 유약하다는 걸 영화 속 리지(미셸 윌리엄스)처럼 이제는 안다.


극장에 가서 남의 인생 얘길 듣는 건 나에게 언제나 변수고 그건 극장이 아주 일상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캘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은 그런 의미에서 변수같은, 타자로 불리는 외부세계 속 소박한 피사체들의 침입이 참 좋았던 영화다. 설레지도 친근하지도 않게 "어, 왔어?" 정도의 인사를 건네는, 뜨거운 여름밤의 기억으로 나를 통과해 간 숱한 영화들과는 다른 불편한 아늑함이었다.


쇼잉 업은 1차원적으로 말하자면 직업으로서의 예술, 그러니까 어딘가 숭고하고 고결해 보이는 예술적 노동에 대한 기호를 해체하려는 시도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루하루 완벽하지 않은 무언갈 해나가며 그저 권태로운 일상을 버티는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에 대한 찬사기도 하다.


조각가 리지는 예술대학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어머니 밑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그 와중에서도 시간을 쪼개거나 겨우 휴가를 내서 본인만의 작업에 임한다.


그러나 그가 꾸려가는 일상의 리듬은 자꾸만 몇 개의 방지턱에 불쾌하게 들썩거린다 (어느 이야기에나 주인공의 매끈한 삶을 방해하는 유무형의 힘들은 필수불가결하지만) 그렇지만 그 방해물들에 예술적인 고뇌나 작품세계가 담긴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노이즈들은 너무 일상적이고 지난해서 고독하고 고되다.


이를테면: 샤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물만 나오는 고장난 수도꼭지, 학교 동기이자 자신의 집주인인 조(홍 차우)의 예술적 ‘천재성’과 일상적 ‘여유(!)’에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갉아먹히는 자아, 어딘가 한 구석씩은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가족들. 이처럼 영화는 숱한 노동처럼 예술노동 역시 애매한 성공과 잦은 실패 가운데서 지체되고 이어지는 것임을 짚어내지만, 동시에 그토록 지지부진한 순간으로부터 파생되는 마법같은 순간들을 포착하기도 한다. 온전하진 않지만 눈길이 가는 반쯤 탄 리지의 조각품같다.


비둘기의 부러진 다리는 리지 자신이 겪고 있는 상처와 단절을 은유하지만 결국 그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리지가 감싸 놓은 붕대를 훌훌 털고 비상한다. 이후 리지는 가벼운 마음으로 조와 산책을 나서 비둘기가 떠난 높은 하늘을 오래 바라본다.


끊임없는 외부의 침범과 그에 반하는 미묘한 고립, 둘 사이에서 무수하게 어긋난 채 접속된 연대는 불완전한 나와 나, 그리고 미지의 너와 나를 연결한다. 그리고 이는 캘리 라이커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다.

<퍼스트 카우>가 다른 시차 속 서부 시대와 현대 미국의 연결이었다면, <어떤 여자들>은 미국 서북부 몬태나 주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네 여성의 심리적인 연결감을 담는다. 쇼잉 업이 말하자면 권태로운 일상을 응원하는 영화인 반면, 어떤 여자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고립된 채 부유하는 미묘한 고독함을 헐겁게 이었다.


<어떤 여자들> 속 조급과 무력과 당혹과 자괴와 자책을 홀로 소화하며 작게 일렁이는 어떤 여자들의 단단한 얼굴처럼, 캘리 라이커트의 영화는 소심한 손길처럼 정적이면서도 입체적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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