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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Dec 24. 2020

전업주부의 일상을 꿈꾸다.

- 출근길 카페에서 본 엄마들의 일상을  그리워하다. -

오늘은 호르몬 주사를 맞는 날이다. 맞을수록 부작용이 느껴진다. 오늘 하루 연차를 내고 같은 병원 호실에서 입원했던 언니, 동생들과 만나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바지런하게 움직인 관계로, 시간이 남아, 동국대학교 교정의 나무들과 단풍들을 눈에 담을 만큼 시원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명동 자연별곡에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후, 연남동을 산책했다. 그러다 '포포리'라고 하는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 엄마 셋이 바로 내 옆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주인은 "어제 드신 카모마일로 할까요" 하니, "예, 그게 좋네요"라고 한다.  단골만이 할 수 있는 대화가 이어지고 본격적인 수다 삼매경에 들어간다.


 아이들은 대학생 아니면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을 둔 엄마들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서서히 생기기 시작하고, 대화의 주제들이 자유롭다. 제일 목소리가 크고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엄마가 시사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다른 엄마들이 맞장구를 친다. 그리고 아파트 시세에 대한 이야기이며, 아파트 단지에 사는 맞벌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 몰라보게 자라는 누구네 아들 이야기, 자기 아이들 대학교 장학금 이야기로 이어지더니,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가야 한다며,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며, 조만간 대만이나, 홍콩으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책을 펴고 앉아 있었지만 귀가 자연스레 쫑긋거리며 엄마들의 대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버스 창가에서 우연히 카페 안 엄마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가슴 시리게 본 적이 있다. 아 전업 엄마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저렇게 동네 엄마들이랑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었다. 엄마들이 매번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듣고 나니 , 정보수집능력이 대단한 엄마들이었다. 그 속에서 재테크하는 여유와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 관련 정보까지 빠삭한 그네들을 보고 있자니, 부럽기까지 하였다. 



빗줄기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네들에게 다가가 요청했다.  "저기요, 제가 우산을 좀 사러 편의점에 가야 하는데 우산이 없어서요. 혹 우산을 잠시 빌려도 될까요", 하니 엄마들의 눈이 둥그레지며, "아, 예 사용하세요"한다. 주도권을 잡는 왕언니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본다.  우산을 사 가지고 다시 돌아와도 그네들의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일어나고 싶지만, 왠지 내가 일어나면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느낌에 끝까지 앉아 있었다. 빗줄기가 잦아들자 그네들은 자리에 일어섰다. 밥 먹으러 가는 모양새다. 그네들의 여유가 왜 이리 부러운지 머리카락이 안 보일 때까지 나의 눈은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나의 일상은 독수리에 쫓기는 뱀같이 하루하루 전쟁터 같아 비교가 되었다. 오늘 하루 비에 젖은 낙엽처럼 내 기분이 바닥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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