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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Jan 13. 2021

고독한 여자의 한숨이 찬바람처럼 스며드는 밤

- 나를 고독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

새벽에 내린 눈이 밤새 쌓여,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창문을 열어 눈 속으로 들어오는 눈의 살결이 목욕탕에 부풀러 올라오는 거품처럼 팽창되어 하늘로 닿을 것 같다. 손에 닿으면 금방 녹을까 봐 갓 태어난 아이의 볼을 만지듯 그렇게 힘주어 만지지도 못한다. 언제 이런 눈을 만져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힘껏 움켜쥐어 본다.     

susan-lu4esm @Pixabay

뭉쳐지는 눈덩이를 바라보다, 어릴 때 동생과 함께 길가에 쌓여 있는 눈을 헤쳐가며 눈사람을 만든 기억이 겹쳐진다. 그때는 눈덩이가 절로 크게 만들어져서 쉽게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요즘 눈은 불신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잘 뭉쳐지지 않는다. 하긴 우리 가족들도 뭉치지 못하고 흩어졌다.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서 종일 밖에서 같이 놀며, 추억을 공유한 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통증이 몰려온다.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며, 자신의 꿈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신이 뜻하는 길과 어긋나는 가족들을 계속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단정하며,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속에서 올라오는 불이 손으로 전달되었는지, 눈덩이가 급속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아쉽지만 내려놓는다. 옷을 여미고 창문을 닫는다.     

susan-lu4esm @Pixabay

뭔가 늘 만지며 자던 인형이 없어 잠을 자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속을 채우고 싶다. 그런데 막상 뭔지를 모르겠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올라오는 심란한 파장이 머리와 몸을 흔든다. 책을 펼치다 말고,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전기 주전자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꺼낸다. 그러다 멜론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음악을 튼다. 


오늘만 커피가 네 잔째다. 머릿속에서는 건강에 좋지 않고, 최근 살도 찌고 있는데 먹지 말라고 설득하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갈망의 허기짐이 자신을 삼킬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마시게 된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말을 걸 사람도 없고, 수많은 전화번호 리스트를 살펴도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다. 오래 살아온 세월임에도 뭔가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을 원하는 지도,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의식도 없다. 그저 이 느낌을 상쇄시킬 만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자각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갑자기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온다.     

susan-lu4esm @Pixabay

동굴 속에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곰’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치도록 벽을 뚫고 나오고 싶은 그 심정을 어떻게 달랬는지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싶다. 사방이 벽으로 캄캄한 곳에 웅크리며 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을 보는 수밖에 없음을 안다. 

susan-lu4esm @Pixabay

그렇게 견디다 보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어디선가 나올 것 같다. 아니 자기 안에서 말이다. 그걸 인정함에도 돌아봐야 하는 나를 거부하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어쩌지 못해 마시고 싶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연신 커피를 마시며, 최소한이라도 달래는 모양새가 처량하다. 오늘 밤에 스며드는 바람은 방황하다 허무하게 포기한 어느 누군가의 한숨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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