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의 재료는 몇 가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테이블 위에 반죽용 볼이 올라온다. 유기농 밀가루를 꺼낸다. 강력분인지, 중력분이지 상관없다. 건강하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으면 족하다. 계란을 꺼내려다 몇 알 없다. 아이들을 위해 이따 프라이를 해주어야 하기에 포기한다. 우유도 없다. 하는 수 없다. 언제나 다 갖추어진 인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잔재주로도 충분하게 사는 사람이 많음을 보았다.
이스트와 물, 소금, 설탕을 꺼낸다. 계량컵이나 숟가락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체 반을 꺼낸 후 가루를 내려준다. 공기가 들어갈 구멍을 만들어주기 위해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연인 사이를 갈라놓아야 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 번보다는 두 번 정도 체에 걸러주면 가루가 싸락눈처럼 소복하게 쌓인다. 가루 위에 소금과 이스트, 그리고 설탕을 섞이지 않도록 각각의 영역을 만들어 숨긴다. 밀가루로 코팅을 1차로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넣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이스트의 힘을 잘 살려야 한다. 어떻게든 이스트가 설탕과 소금에 닿지 않도록 하면서 섞는다. 그리고 주걱으로 몇 차례 섞는 둥 마는 둥 젖어서 뭉치도록 한다. 그런 다음 너희는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주지 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치대어 준다. 많이 치댈수록 결이 부드러운 빵이 된다. 만들어진 빵의 단면을 살펴보면 스트레스를 줄수록 빵이 부드러움을 피부로 느낀다.
다음에 할 일은 발효과정이다. 이때는 내가 모르는 자연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반죽이 담긴 쟁반은 비닐랩이나 가제 천으로 막아 공기를 막아야 한다. 그런 후 미리 데워놓은 커다란 냄비로 가져간다. 반죽이 담긴 볼을 냄비에 걸쳐놓으면 냄비 속의 미지근한 훈김이 이스트가 활동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한다. 1시간 지나면 아지랑이 속에서 뽀얀 속살을 내민 새싹처럼 수북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때 한 번 더 주걱으로 가스를 빼준다. 그리고 2차 발효를 한 번 더 한다. 30분 후 천을 올려보면 전보다 쑥 자란 아이처럼 커져 있다.
이제 반죽을 꺼내어 기다란 나무 도마 위에 놓는다.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어 동그랗게 굴린다. 여기서 어떤 모양으로 할지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모닝 빵처럼 공 모양이 되느냐, 식빵처럼 직사각형 모양이 되느냐 아니면 모카 빵처럼 타원형이 되느냐는 그날의 기분에 달려있다. 오늘은 공 모양의 모닝빵이다. 도마 위에 7개의 밀가루 공이 탄생했다. 주인 손에 이리저리 치대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잠시 쉬게 한다. 잠시나마 정신을 차리고 오븐이나 화로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노 오븐으로 굽을 생각이다. 커다란 프라이팬을 꺼낸다. 그리고 종이 포일을 크기에 맞게 잘라 깐다. 공 모양으로 성형된 7개 밀가루 반죽을 프라이팬에 모양을 잡아 배치한다.
그리고 가스 불을 켠다. 뚜껑을 덮은 프라이팬은 약 불로 열을 주어야 한다. 중간에 반죽 밑바닥이 어느 정도 구워지고 있는지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표면을 보면서 반죽 옆쪽도 굴러서 구워 주면 완성이 된다.
망에 구워진 빵을 놓는다. 김이 퍼지면서 향내도 진동한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식기도 전에 손을 댄다. 잼을 발라 먹으려고 만든 빵은 2개 정도 남는다. 그 몫은 아빠 차지다.
장본인은 먹을 볼 기회가 없다. 그래도 아이들 먹은 빵은 엄마의 정성과 자연의 노고가 합친 부산물이기에 훗날 돌이켜 볼 때 따뜻한 감성으로 새겨 있을 것이라고 위안 삼아 본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야 맛있는 빵이 되는 것이 아니며, 좋은 도구가 있어야 훌륭한 빵이 되는 것도 아니며, 정해진 조리법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재료를 섞어서 만들면 빵이 된다는 감각이 있다면 어떤 재료를 가지고 와도 만들 수 있는 게 인간의 능력인 거 같다. 간단한 재료로 빵을 만드는 작업이 보기에 쉬워도 맛의 풍미를 살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할수록 느낀다. 내 안에 있는 몇 가지 재료로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진화된 인간을 꿈꾸며 작업대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