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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맘 Mar 20. 2021

그런 날. 어쩔 수 없음을 아는 날.

- 나와의 상처가 드러나는 순간 -


글을 올리지 못한 핑계를 대라면 수없이 많지만, 복직 이후 적응기간과 새로운 업무에 대한 강도 높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한동안 맥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12년 햇수 동안 익숙한 일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재미보다는 고생길에 대한 아픔이 먼저 다가온 시간들이었다.


하루하루를 견뎌낸다는 것이 다가오는 시간들이었다. 3주 동안 1년이 지나간 것처럼 그렇게 쌀 한 톨 한 톨 생식으로 먹는 사람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내 피부로 느끼면서 보냈다. 업무인계를 해주는 전임자의 등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은 간다는 느낌을 발산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전임자의 작업방식이 나와 맞지 않으니, 암호 해독하는 보안전문가처럼 그렇게 파일들을 하나하나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머리로, 몸으로 체득될 때까지 절대적인 시간이 지나가야 함을 알고 있다.

어제 온몸으로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에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자라오면서 긁힌 상처들이 서로 만나 아우성치는 날이었다. 내 얼굴에 타고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었던 하루이다. 그렇게 '꺼이, 꺼이'울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났다.


엄마였다. 수 없이 많은 세월 동안 노력과 달리 흘러가지 않는 시간들 앞에서 자신을 볶아대며, 힘들어했던 엄마였기에 딸로서 제대로 서는 날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엄마의 흩어진 시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더 강렬하게 원했다.


"엄마, 잘 지내 지시오"

"응, 나 요즘 제일 편안하다. 넌 요즘 힘드니?"

"새로운 업무를 하는 데, 힘이 들긴 하네요."

"몸은?"

"아파도 참을만해요.

"엄마는, 그게 제일 걱정이다. 너만 건강하면 된다."

"엄마, 오늘 전화한 이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 무슨 말을. 난 우리 딸이 나에겐 최고로 고마운 존재인데. 미안하다는 말을 왜 하려고 하니?"

"누구보다도 잘 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자랑이고 싶었지만, 살아보니 내 노력과 상관없이 흘러가서,

뜻대로 안 되네요. 그게 너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이 말을 오늘 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아서요."

"요즘 정말 힘드나 보구나. 여기 좀 쉬어다 가면 좋을 텐데.. 엄마도 살아보니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 다 때가 있더라. 그러니 너무 애 써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게 좋아. 엄마 요즘 경을 읽으면서 마음이 한결 가볍고 좋다. 난 너만 행복하면 좋아"


이렇게 시작된 통화가 길어지다, 결국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내 안에서 불안하여 그걸 감추기 위해 노력하고 용썼던 아이가 운 것이다.

그렇게 흘러내린 눈물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아침에 잠깐 잠이 들다, 일어났는데, 창 밖으로 분홍 벚꽃이 서러울 정도로 환하게 피어나 있어다.

부슬부슬 빗방울에 그 빛깔이 더 선명 해서, 내 마음속 풍경과 대조적으로 아름다웠다.

어제까지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고 이해되는 하루였는데,

오늘은 밥을 먹으면서 시리도록 아름다운 벚꽃을 보면서 감상하는 나를 보니,

생각이라는 녀석은 참 얄밉도록 숨바꼭질하고, 회전목마처럼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 같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울게 만들었을까?

10년 전에도 버스를 타고 가다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에 당혹스러웠는데,

어제 눈물은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눈물이어서 더 슬펐는지 모르겠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인 거 같다.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둑이여야 하는데,

밀쳐내고, 보기 싫어하는 나를 발견한 하루여서 더 그런 것 같다.



핀 벚꽃만을 보지 말고,

앞으로 피어날 봉우리를 보면서 다독이고 있다.

"지금까지 잘 견뎌내 준 너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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