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지 않으려다,
끌려다니며 살아온 시간

- 언제간 깨어진다 -

by 봄맘

모난 돌과 바위에
부딪혀 다치는 것보다


같은 물에 생채기
나는 게 더 두려워
강물은 저토록
돌고 도는 것이다.

바다에 처음 닿은
강물의 속살처럼 긴장하며
나는 그토록
아프고 아픈 것이다.
[이산하,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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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시집이다.


학생운동과 필화사건으로 16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며 삶의 굴곡을 지나온 시인이다.


한강을 바라보며, 이 시인의 울림을 듣다 보며, 어쩜 우리는 정면으로 승부하고 사는 게 아니라,


덜 부딪히려고 피해 가는 삶을 택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의 부정성과 못난 습관 등을 닮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들이 잘 커 주길 바랬다.


허나, 하늘 아래 내 호흡 소리 하나마저도 들리는 촘촘한 에너지 공간에서는 어김없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퇴근하고‘한강 노을 보러 갈래’라는 말 한마디에 흔쾌하게 따라나선 큰아들과 나란히 앉았다.


간간히 불어오는 강 바람을 맞으며, 음악과 함께 말 없이 쳐다 보았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산산히 부서져 가면서도 색을 잃지 않는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꼈는지,


두 팔을 벌려 ‘존나 좋아, 엄마!라며 연신 말한다.


요즘 학교생활은 어떤지, 상담사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며, 어떤 고민이 있는지 등


많은 대화를 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슴을 열어주고, 함께 그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만감을 느낄 줄 아는 나이가 된 아들을 어리게 본 나의 시선이 어리숙했다.


새롭게 만나는 정신세계의 불안함과 계급의식에서 오는 사회 차별 속에서


방황하는 아들에게 마음의 지평선을 확장 시켜 주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게 다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시험 가동하는 바닥 분수 쇼를 보면서,


계획하지 않은 ‘엄마와의 나들이’에 감사했는지,


빠르게 밟지 못하는 엄마를 뒤를 그대로 따라오는 아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늘 깨지는 아픔을 택하기보다는 아슬아슬 넘어가는 비겁함을 선택하며 산 거 같다.


적당하게 버무려, 차린 식탁에는 정성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기 바라는 새가슴을 지는 사람의 시간만이 새겨졌다.


지는 해의 부서지는 아픔처럼 그렇게 기꺼이 내맡기고 깨져야


찬란한 세계를 열 수 있나 보다.


그걸 보지 못하는 나에게 소리 없이 알려주는


자연의 고마움을 한 톨의 쌀알이 주는


의미만큼 알게 된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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