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수의 팬으로서 그 가수가 내디뎌가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작년부터 팬이 된 일본의 밴드가 있다.
글을 연재하며 종종 언급했던 오피셜히게단디즘(약칭 히게단)이라는 밴드이다.
삶의 철학을 노래하는 이들이 좋았다.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지금,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을 때마다 히게단의 노래는 나에게 힘을 주었다. 보컬인 후지하라 사토시는 성대 폴립(용종)으로 인해 한동안 휴지기를 가졌는데, 이때의 경험은 삶의 고난을 노래하는 'SOULSOUP'라는 곡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힘들 때는 음악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SOULSOUP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작년 히게단의 첫 내한공연은 나를 히게단에 더욱 빠져들게 했다.
지금까지 살며 갔던 공연 중 가장 힘들게 구한 표였고,
가장 좋지 않은 맨 뒷자리였다.
그러나 공연은 내 영혼을 울리는 듯했다.
그동안 이어폰으로만 듣던 노래를 라이브로 듣게 되다니,
하물며 히게단을 좋아하는 8천 명의 팬들과 함께 있다니
모든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내한 공연 이후, 올해 초 히게단이 첫 스타디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타디움은 가수로서 꿈꿀 수 있는 최대 규모의 공연장이다.
흔히 일본의 밴드는 라이브 하우스 < 홀 < 아레나 < 돔 < 스타디움 순서로 성장을 하며 나아간다고 한다.
팬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첫 스타디움이라는 무대를 함께 밟고 싶었다.
무대는 오사카의 얀마 스타디움과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
그나마 가까운 얀마로 가고 싶었다.
공연은 5월 말에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창 학기가 진행 중일 때였다.
어차피 죽는다면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경험해보고 싶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학기 중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기에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나 상담과 박사논문에 지장이 생기진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결국 고민 끝에 스타디움 공연은 가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의 발자취를 함께 하는 것도 좋았지만, 내 발자취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점에서 스타디움 공연은 끝난 지 한 달이 넘었고 얼마 전에는 라이브 영상도 하나 올라왔다.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함께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은 라이브 영상을 보지 못했다.
생각보다 아쉬움이 많이 컸나 보다.
'어차피 죽는다면'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지만,
어차피 죽는다고 해도 원하는 모든 것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렇기에 인생은 더 재밌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쉬움 없이 재미만 있는 인생은 지루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