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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Oct 26. 2021

오랜 친구들

2021년의 일상

 나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도, 학창 시절 친구도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이 없다. 그나마 대학교 때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자주 보기가 어렵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국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상황이 좋아지면 다 같이 얼굴 보자라며 벼르고 벼르던 우리는 드디어 토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아이를 시댁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온 친구들과 막 일을 마치고 온 친구, 모임에 다녀온 친구, 청주에서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나까지 드디어 4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렇게 긴 시간을 돌아 만나 우리가 나눈 첫마디는 빨리 주문하자였다. '여전하네 우리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난 이 여전함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났다고 어색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들이 조심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늘 이 자리에 함께 있던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집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는 맡은 역할에 따라 책임감이 커져가고 있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모두 자기 자신이 됐다. 강의실 앞에 모여 수다 떨며 세상 모든 근심거리가 연애와 시험이 전부였던 그 시절 우리의 모습으로.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그냥 나.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서로에 대한 신뢰가 편안함이 된 그런 사이. 나이가 들면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부담스러운데 이렇게 편안한 사이가 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축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내 시간을 쪼개 신경을 써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니 지금 유행하는 이슈거리나 서로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말을 건네지 않아도 되는 오랜 친구들이 더욱 소중하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으로 분위기를 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대화를 나누는 주제는 많이 달라졌지만 수다는 수다다. 그냥 떠들고 웃고 때로는 어른스러운 걱정도 하며 오래 기억될 시간을 만든다. "정말 우리가 다 같이 본 지 그렇게 오래됐어?"라고 말할 만큼 또다시 오랫동안 보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어제처럼 기억이 날만큼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맞아, 그때 거기 맛있었지."라고 기억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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