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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11. 2021

적응이 필요해

출근만 3시간, 어떻게 다니지?

 청주로 이사하고 처음으로 일을 하러 서울에 가게 됐다.  개월 만에 하는 일에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기 전부터 걱정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실험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진 이후로는  청주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 일이 있을 때만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주로 전날에 가서 자고 일이 끝나면 자고, 다음날 내려오는 패턴으로 생활했다.  달에 며칠,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편하게   있는  집이 있었는데. 이젠  자그마한 공간마저 사라졌다.      


 청주로 이사를 생각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문제는 이것이었다. 과연 출퇴근할 수 있을까? 

 청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1시간 30분. 집에서 터미널까지 20분.

 강남에서 일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 40-60분. 대략 3시간이 걸리는 출근 시간이다.

 예전에도 잠시 청주에서 출퇴근했었다. 15년을 키운 반려견이 많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자 출퇴근을 했었다. 다행히 회사 위치가 잠원이라 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깝고, 6시 칼퇴를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공연은 기본 근무시간이 오전 9시-밤 10시다(극장 기준으로) 어찌어찌 출근은 하겠지만 퇴근이 문제다.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차 막힘과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면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무조건 버스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점과 만약 막차를 타기 어렵다면 서울에서 잠을 자야 한다. 하루나 이틀은 지인의 집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만약 장기 공연이라도 하게 된다면? 벌써 생각이 많아진다.    

  

  다행히 이번엔 하루짜리 행사다. 버스를 타기로 하고 잠은 친한 언니 집에서 하루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오랜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10년이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던, 내겐 너무나 익숙한 장소다. 그런데 조금씩 내부 공사를 하더니 이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터미널의 바뀐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벌써 서울이 어색해진다. 서울 시민에서 청주 시민이 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다니. 부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실 때마다 얼마나 낯설었을지 이해가 됐다.      


 사전 미팅을 마치고 언니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코로나로 인해 내 시간만 멈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구나. 나만 코로나를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생활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약간 감이 떨어진 느낌이었지만 오래 손발을 맞춰온 크루들 덕분에 잘 끝마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날 무렵 고속버스 앱을 통해 내려갈 차를 예매했다. 여전히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간격으로 배차가 돼서 선택을 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종로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걷는 시간을 포함하면 대략 30-40분, 여유 있게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7시 30분 차를 예매했다. 잘하면 터미널에 가서 햄버거 하나는 먹고 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정말 오랜만에 와서 감이 떨어진 걸까? 퇴근 시간임을 잊었다. 노브랜드 버거에도 버거킹에도 사람이 많았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던킨도너츠에 가서 도넛 두 개를 사서 먹었다.


 정시에 들어온 버스를 타니 만석이었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빈 좌석이 꽤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 음악을 켜고 눈을 감았다. 정확히 한 시간 이십 분 후에 눈이 떠졌다. 10년이 넘게 버스를 타니 늘 톨게이트를 지날 때쯤 깬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직도 10㎞가 남았다. 서울을 빠져나올 때 차가 막혔나 보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집에 오니 9시가 다 됐다.

 분명 어제도 잘 잤고 내려오는 버스에서도 잤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건지.

 비록 하루이긴 했지만 이런 생활을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니 잘 적응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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