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만 3시간, 어떻게 다니지?
청주로 이사하고 처음으로 일을 하러 서울에 가게 됐다. 몇 개월 만에 하는 일에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기 전부터 걱정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실험해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코로나가 심해진 이후로는 쭉 청주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 일이 있을 때만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주로 전날에 가서 자고 일이 끝나면 자고, 다음날 내려오는 패턴으로 생활했다. 한 달에 며칠,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편하게 잘 수 있는 내 집이 있었는데. 이젠 그 자그마한 공간마저 사라졌다.
청주로 이사를 생각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문제는 이것이었다. 과연 출퇴근할 수 있을까?
청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까지 1시간 30분. 집에서 터미널까지 20분.
강남에서 일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시간 40-60분. 대략 3시간이 걸리는 출근 시간이다.
예전에도 잠시 청주에서 출퇴근했었다. 15년을 키운 반려견이 많이 아파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자 출퇴근을 했었다. 다행히 회사 위치가 잠원이라 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깝고, 6시 칼퇴를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공연은 기본 근무시간이 오전 9시-밤 10시다(극장 기준으로) 어찌어찌 출근은 하겠지만 퇴근이 문제다.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차 막힘과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하면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무조건 버스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점과 만약 막차를 타기 어렵다면 서울에서 잠을 자야 한다. 하루나 이틀은 지인의 집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만약 장기 공연이라도 하게 된다면? 벌써 생각이 많아진다.
다행히 이번엔 하루짜리 행사다. 버스를 타기로 하고 잠은 친한 언니 집에서 하루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오랜만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10년이 넘게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던, 내겐 너무나 익숙한 장소다. 그런데 조금씩 내부 공사를 하더니 이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터미널의 바뀐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벌써 서울이 어색해진다. 서울 시민에서 청주 시민이 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새롭게 느껴지다니. 부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실 때마다 얼마나 낯설었을지 이해가 됐다.
사전 미팅을 마치고 언니네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코로나로 인해 내 시간만 멈춰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구나. 나만 코로나를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생활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일을 하니 약간 감이 떨어진 느낌이었지만 오래 손발을 맞춰온 크루들 덕분에 잘 끝마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날 무렵 고속버스 앱을 통해 내려갈 차를 예매했다. 여전히 출퇴근 시간에는 10분 간격으로 배차가 돼서 선택을 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종로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걷는 시간을 포함하면 대략 30-40분, 여유 있게 한 시간 뒤에 출발하는 7시 30분 차를 예매했다. 잘하면 터미널에 가서 햄버거 하나는 먹고 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정말 오랜만에 와서 감이 떨어진 걸까? 퇴근 시간임을 잊었다. 노브랜드 버거에도 버거킹에도 사람이 많았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던킨도너츠에 가서 도넛 두 개를 사서 먹었다.
정시에 들어온 버스를 타니 만석이었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빈 좌석이 꽤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 음악을 켜고 눈을 감았다. 정확히 한 시간 이십 분 후에 눈이 떠졌다. 10년이 넘게 버스를 타니 늘 톨게이트를 지날 때쯤 깬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아직도 10㎞가 남았다. 서울을 빠져나올 때 차가 막혔나 보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집에 오니 9시가 다 됐다.
분명 어제도 잘 잤고 내려오는 버스에서도 잤는데 왜 이리 피곤한 건지.
비록 하루이긴 했지만 이런 생활을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니 잘 적응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