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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12. 2021

산책이 좋아

산책의 위험성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는 제이와 함께하는 산책이다. 제이가 야외 배변을 선호하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일과이기도 하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쉬고 싶기도 하지만 오후 산책을 쉬면 제이가 심술을 부린다. 딱 오후 산책을 하는 시간 동안 시위라도 하듯 아주 교묘하게 배변 패드 주위에 쉬를 한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미세먼지가 상당히 나쁜 날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산책을 한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에서 급한 배변만 해결하고 들어온다. 그러면 산책을 하는 시간 동안 마킹을 하는 만큼 자주, 조금씩 쉬를 한다. 패드 모서리에 두 시간 동안이나. 한두 번은 산책을 못 간 제이 마음이 이해돼 아무 말도 안 하고 치운다. 그런데 실수가 아닌 고의가 계속되면 나도 슬슬 짜증이 나 제이를 나무란다. “제이, 내가 가기 싫어서 안 나간 것도 아니고. 이렇게 비가 오는데, 너 나한테 너무한 거 아냐?” 이렇게 말해도 제이는 “나는 그런 건 모르겠고 못 나가서 속상해.”란 눈빛으로 쳐다보며 쉬를 한다. 이러니 어찌 안 나갈 수 있겠는가. 

 산책을 하루 쉬고 난 다음 날이면 제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가 된다. 겨우 하루 안 나왔을 뿐인데 며칠이나 갇혀 있던 것처럼.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고개를 들고 걷을 생각이 없다. 코가 바닥에 붙은 듯 있는 힘껏 킁킁거리며 바닥 냄새를 맡는다. 슬쩍 냄새만 맡는 것과 힘껏 킁킁거리는 건 소리부터 다르다. 슬쩍 냄새만 확인할 땐 마치 “내가 잠시 너의 냄새를 맡아도 되겠니?”라고 공손하게 부탁하는 느낌이라면, 힘껏 킁킁거리는 건 “여기에 수상한 냄새가 납니다. 지금부터 이곳을 통제하고 수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폴리스라인을 치는 경찰 같은 느낌이다. 매일 같은 곳을 가는데도 이렇게 좋을까 싶다. 

 요즘 우리가 다니는 주 산책로는 뒷산이다. 동네에서 아는 사람만 다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산이다 보니 고양이도 많지 않아 산책 최대의 적, 고양이 똥을 마주칠 일이 확 줄어든다. 소나무가 많은 산이라 향긋한 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친구들이 만나고 싶으면 제이는 슬쩍 왼쪽으로 꺾어 동네로 내려간다. 줄에 묶여있는 진돗개들이지만 잠시 인사를 한다. 비록 멀찌감치 떨어져서 코를 흥흥 움직이며 냄새를 맡는 것이 인사이긴 하지만. 사실 제이는 겁이 많고 다른 개들에겐 관심이 많지 않다. 사회화 시기에 친구들을 거의 못 만났고 이후에도 코로나로 인해 애견 카페나 운동장은 내가 의도적으로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나가는 길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한 번씩은 관심을 둔다. 

 제이가 겁이 많긴 하지만 새로운 장소는 좋아하는 편이다. 제이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처음엔 마킹을 하지 않고 탐색을 하듯 주변 냄새만 확인하며 걷는다. 두세 번은 가야 마킹을 하며 영역 표시를 한다. 마치 “이젠 손님이 아니고 이곳도 내 땅이야.”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많은 곳을 함께 다니진 못했지만, 더 많은 새롭고 좋은 장소를 제이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산책을 사랑하는 제이와 함께 하니 지금처럼 호흡을 맞춰가면 우린 서로에게 좋은 산책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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