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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내가 제일 행복할 때



백수가 된 지 한 달 하고 20일. 친구와의 약속으로 점심시간에 명동에 갔다. 매달 5만 원씩 적금을 모은 돈으로 지난주 묵주 반지를 맞추었다. 그 반지가 오늘 나온다. 반지도 찾을 겸 점심도 먹을 겸 콧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그래도 바깥공기는 집안 공기보다 좋은 듯하다. 기분이 상쾌하다.  

약수역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 역에서 한번 갈아탄다. 평일 점심시간은 지하철에 사람이 많지 않다. 승강장은 더웠지만 지하철을 타니 시원했다. 나는 공황장애가 있어 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다. 언제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올지 몰라서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약수에서 명동까지는 총 3정거장이다. 이 정도는 긴장은 되지만 탈수는 있다.

명동역에 내려 시간을 보니 아직 시간이 40분이나 남았다. 치과병원을 다니는 친구의 점심시간은 1시부터이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잠깐 은행 업무를 보러 갔다.  친절해 보이는 은행원에게 업무를 보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조바심이 났다. 30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10분.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가는데 친구에게 톡이 왔다. 

"천천히 와. 내가 가는 시간도 있으니까.."

조금 더 걸어 로또 판매점으로 갔다. 지난주에 로또는 '다 꽝'이었다. 매주 만 원씩 사는데 오늘은 햇볕이 좋아 2만 원이나 샀다. 점심시간에 뭘 먹고 싶냐는 친구의 물음에 10년 전 먹었던 충무김밥이 생각이 나서 그곳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오래간만에 나온 번화가 기분이 좋다. 약속시간 보다 5분 먼저 도착해서 김밥을 시켜놓고 있으니 친구가 금방 왔다.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밥을 먹었다. 10년 전에 먹었던 그 충무김밥의 맛은 아니었다!  깍두기가 매워서 눈물이 났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인데... 좀 더 있으니 속에서 불이 났다. 나는 김밥과 국물만 먹었다. 그래도 친구랑 수다 떨며 먹는 점심 식사는 좋았다. 

밥을 먹고  반지를 찾으러 명동성당에 들렀다. 언제 봐도 멋진 성당이었다. 친구에게 있던 반지와 똑같은 것을 맞춘 나는 좋아서 싱글벙글이다. 자동으로 커플 반지가 되었다. 집에서 가져간 안 쓰는 팔찌와 반지 하나를 주고 펜던트랑 교환했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역시 새 거는 좋은 거다. 기분이 마냥 좋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친구의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됐다.  친구는 혼자라도 '여유를 즐기며 차를 마시라'며  원격으로 커피를 주문해 주고 갔다. 혹시라도 일찍 가면 커피숍에서 책을 읽으려고 가방에 한 권 챙겨두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곳에는 사람이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었다. 직장 생활할 때는 낮에 일 안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부러웠다. 뭐 하는 사람들인데 평일에 커피숍에서 책이나 읽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걸까? 궁금했었다. 막상 내가 그러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 각자의 인생에 사정이 다 있겠구나. 그중 나는 실업자다. 

책을 읽으려니 음악소리가 너무 거슬렸다. 나는 글을 쓸 때도 음악이 아닌 자연의 소리를 틀어놓고 쓴다. 나의 독서와 음악은 궁합이 맞지 않았나 보다. 30분 정도 앉아있다가 사람이 점점 많아져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집 가는 버스를 타고  오는데 커피숍에서 살까 말까 집었다가 그냥 놔둔 텀블러가 생각이 났다.  '살걸...'

늘 집보다 회사가 편했다. 이 나이가 돼도 엄마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회사에선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할 일 알아서 챙기고 말 나오기 전에 스케줄에 맞춰 일하면 그만이었다. 백수생활로 인해 뜻밖의 천적과 하루 종일 만나야 했다.  

'우리 딸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간섭받기 싫어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하고 싶을 때 한다. 청소도 빨래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내 맘대로 한다. 나는 뭐든 내 맘대로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냥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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