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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Sep 07. 2021

나를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멸망한다

몸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다.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고 코로 숨을 쉬며 입으로 의사소통한다. 팔로 물건을 들거나 손으로 생활을 한다. 다리로 어디든지 가며 두 발을 지탱해 이 세상에 선다. 몸은 이 세상에 나를 머물게 하는 영혼의 집이다. 몸이 건강해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몸이 아프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할 수 없고 필요 없다. 몸은 그만큼 중요하다.



몸을 말하며 마음의 건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몸의 건강이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건강이라면 마음은 영혼을 살게 한다. 마음이 아프면 몸까지 아파지는 경험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다.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서 늘 우울했고 우울한 만큼 몸도 아팠다. 처음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을 때는 안면마비가 왔고 불안한 마음 상태가 지속되자 공황장애가 왔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끝없이 몰려왔다. 차라리 그냥 죽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을 때 세상이 멸망한 것 같았다. 인간의 삶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존재해도 무용지물이다. 세상을 볼 수 없는 나는 있어도 없는 것이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어떻게 죽어야 고통 없이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죽는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죽음을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때의 경험이었다.



동네에 새로운 친구 숙희를 알게 되었다. 친구와 놀면서 알게 된 새로운 친구였다. 웃는 게 밝고 만화에 나오는 영심이를 닮았다. 넓은 이마에 입이 크고 단발머리를 하나로 묶은 웃는 모습이 예쁜 아이였다. 공부도 잘했다. 나는 공부에 관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었는데 그 친구가 몇 번 알려주곤 했다. 친구네는 옥상 화분에 꽃을 키웠었다. 예쁘게 핀 빨간 꽃이 인상적이었다. 친구 오빠는 나이가 좀 많았다.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주로 집에 있었다.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었고 생각보다 착했다. 엄마는 일을 나가시고 아빠는 몸이 아프셔서 방에 누워계셨다. 고무줄놀이도 하고 옥상에서 소꿉놀이도 했다. 가끔 숙제도 같이하고 잘 모르는 우리 동네를 안내하기도 했다. 몇 달이 지나 연락이 뜸해졌다. 두 명이 놀다가 세 명이 같이 노니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한동안 그 친구들과 놀지 않았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학교로 형사 두 명이 나를 찾아왔었다. 숙희와 관련된 일을 캐물었다. 나는 아는 대로 다 말했다. 그때까지 숙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같이 놀던 친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숙희는 며칠 전 실종됐다고 했다. 좀 놀랐지만, 당연히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일은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삼촌에게 500만 원을 빌려주었고 형편이 어려운 엄마가 돈을 갚으라고 하자 삼촌이 내 친구를 암매장했다고 보도되었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모두 충격에 빠졌다. 친구들은 그 일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죽음이란 것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었다가 가깝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당장 급급한 사소한 일에 매달리다가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아무짝에 소용없는 일이다. 내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 숙희 생각이 많이 났다. 숙희는 그때 14살이었다. 아마도 간절히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숙희에 대한 모독이며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너의 몫까지 두 배로 잘 살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죽음에 대해서 마음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아니 친구를 생각하면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비 고비를 살아냈다. 나를 잠시 내려놓고 생각을 멈추니 살아졌다.



사는 것이 크게 별일이겠으나 또 어찌 보면 별일 아닐 수가 있다. 힘들 때는 잠시 나를 내려놓는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당장 죽게 된다면 지금 내가 마음 졸이는 일이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나는 점점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죽을 때까지 연습한다.



한동안 힘든 일은 생각하지 않고 묻어버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에 병이 생겨 공황장애까지 오고 나니 무조건 덮는 게 상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명상을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안에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내가 묻어놓으려 했던 생각이나 분노, 혐오 오만가지 감정이 일어난다. 생각나는 것을 끝까지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그렇게 케케묵은 감정을 털어냈다. 반복하다 보니 완치는 아니지만, 공황 증상도 점차 사라졌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약속한 대로 포기하지 않고 살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가 죽어 나의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사는 것을 즐기면서 여행자처럼 살기로 했다. 나는 아직 이 세상에 있고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당신도 당신만의 세상을 위해 당당히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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