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꾼이 되기로 작정했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연말연시에 적당히 놀면서 쓸 200만 원만 있으면 충분했다. 물론 다다익선, 그 이상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괜히 섣부르게 큰 탕 한번 치고 잡혀가느니 작은 건수에서부터 노하우를 쌓아가는 편이 안전하다. 위대한 소도둑이 되려면 바늘 훔치는 연습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응? 젊은 놈이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왜 하필 사기냐고? 그것은 세상의 돈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산다. 나만 해도 그렇다. 온라인 중고물품 거래에서 입금을 하고 물품을 못 받은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 봐도 소용없었다. 담당형사는 시큰둥하게 몇 마디 물어보고 몇 달째 연락이 없기 일쑤였다. 한 번도 내 돈을 돌려받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사기를 치면 안 된다’는 쓸모없는 교훈을 준 것이 아니라 ‘사기를 쳐도 안 잡히는구나’ 하는 실용적인 교훈을 주었다.
그동안 모두가 나를 속였지만 나는 누구도 속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의 손해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돌고 도는 게 돈이라는데 왜 나는 빠져나가는 돈만 있고 들어오는 돈은 없는가. 여기저기서 사기치고 등쳐먹는데 왜 나 혼자만 등신같이 당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깨달았다. 내가 당한 만큼 누군가가 또 당해야 나의 손해가 보충된다는 사실을. 나를 속인 녀석들도 어디선가 속았던 녀석들이겠거니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 역시도 누군가를 속여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니까. 적어도 나는 사기꾼일망정 타인에게나 나에게나 공평한 사람인 것이다. 요컨대 세상이 육식인간과 초식인간으로 나뉜다면 나는 기꺼이 육식인간이 되기로 결심을 굳혔던 것이다.
사기꾼이 되기로 작정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대포폰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전에 운 좋게 지하철 안에서 주운 핸드폰을 들고 용산전자상가에 가보니 대포폰 만들어 주는 곳은 수도 없이 널려 있었다. 그곳 기술자들은 내 핸드폰의 esn(고유번호)를 주운 핸드폰의 esn으로 등록시켜 주었고 개통비 1만 원에 선불 3만 원을 더 내니 선불폰으로 개통까지 시켜 주었다. 신분증을 안 보여드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는 오직 믿음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무슨 사업을 하시려는지 모르지만 이 정도만 하시면 경찰도 절대 추적하지 못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대포통장은 발품을 팔 필요도 없었다. 포털사이트 검색 창에 ‘대포통장’ 네 글자만 치면 관련 카페 목록이 주루룩 떴다. 나는 그중에서 인터넷에서만 4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믿음과 신뢰의 ‘OO상사’에 20만 원을 주고 대포통장을 주문했다. 과연 한번 온 고객은 다시 찾는다는 OO상사다웠다. K은행의 감쪽같은 대포통장은 노숙자일 것으로 짐작되는 누군가의 주민등록증과 함께 다음날 제꺼덕 배달이 되었다. 자기들이 4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대포통장을 팔아봤지만 지금껏 한 번도 경찰의 추적은 받은 적이 없다는 자부심 어린 쪽지도 첨부되어 있었다.
자,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다. 나는 노트북 중고거래로 유명한 사이트에 요즘 가장 있기 있는 A사의 최신형 노트북을 매물로 올렸다. 그런 고가의 노트북이 나에게 있을 리가 없기에 사진은 A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것을 도용했다. 물론 회원가입은 대포통장의 신분으로 했고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PC방을 이용했다.
- 급매입니다. 카드 값 때문에 시세보다 30만 원 정도 낮은 가격으로 드립니다. 010-4329-****으로 연락 주세요.
매물을 올리고 집으로 오는 중에 문의전화와 문자가 15통이 넘게 왔다. 그 중에는 지금 당장 돈 부쳐 줄 테니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아 달라는 어수룩한 녀석도 있었다. 이 녀석들은 도대체 뇌가 있는 것일까? 떡밥을 뿌리자마자 월척들이 서로 먼저 물겠다고 몰려드는 꼴을 보니 한심하기도 하고 왠지 뿌듯하기도 했다. 가장 어수룩해 보이는 녀석을 골라잡아서 문자를 몇 번 주고 받자 정확히 5분 후 내 대포통장 계좌에 230만 원이 입금되었다. 나는 CCTV를 의식하여 머플러와 모자, 선글라스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집에서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은행지점으로 가서 금액을 모조리 인출했다. 물품을 부치고 송장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가 온다. 당연히 송장번호는 알려 주어야지. 재화란 돌고 도는 것.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꽤나 공평하고 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베란다에 굴러다니는 시커먼 돌을 아무거나 하나 집어서 박스에 넣고 택배로 부쳤다. 모양도 넙죽하고 무게도 적당한 게 노트북 대용품으론 딱 이었다. 택배비 5천 원이 추가로 깨지긴 했지만 230만 원이나 주셨는데 그깟 5천 원이 아까우랴. 최소한 박스를 받아서 테이프를 찢고 제품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가슴 떨리는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그 작은 기쁨마저 빼앗을 정도로 악랄한 사기꾼은 못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신비가 많다. 연말연시라 배송이 오래 걸리다 보니 노트북이 오는 도중 화석으로 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나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송장번호까지 문자로 보내주고 나서 곧바로 대포폰을 해지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다음 건수에 가입비가 좀 더 들더라도 이 방법이 안전했다. 히트 앤드 런!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라!
오랜만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나는 그동안 얻어먹고 다녔던 친구들을 모아 오랜만에 거하게 술을 샀다. 원양어선 타고 돌아온 뱃놈이라도 되는 양 전대를 풀어놓고 돈을 써대는 나를 보고 친구 놈들은 돈벼락이라도 맞았느냐고 놀라워했다. 이제야 비로소 돈이 순리대로 도는 것을 실감하며 나는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즐겼다.
다음날 아침 집에 돌아갔을 때, 집에는 낯선 남자가 수첩을 꺼내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턱수염이 텁수룩한 남자는 나에게 경찰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디에서 꼬리가 잡힌 걸까. 어제 하루 동안 내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실수를 곰곰이 복기해 보았다. 없다. 아무데서도 꼬투리를 잡힐 건덕지가 없다. 더구나 아직까지 물품을 배송 중일 터였다.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경찰이 대답했다.
“어저께에 댁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수집하신 1천만 원 상당의 운석을 집어갔더군요. 허 참, 워낙 고가라 사모님 모르게 몰래 사서 평범한 돌덩이처럼 베란다에 놓으셨다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쏙 집어갔는지…… 혹시 짐작가시는 분 없으십니까? 자주 드나들던 이웃집 사람이라든지…….”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세상의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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