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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대행

by 아이디어셀러

“죄송하지만 이제 그만 저와 헤어져 주셔야겠습니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는 탁자 위에 엎어지듯 고개를 숙였다. ‘석고대죄’라는 표현의 시각자료로 쓸 만 한 훌륭한 자세였다. 이마가 탁자에 부딪히며 난 쿵! 소리에 카페 안의 사람들이 잠깐 돌아봤지만 곧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돌아서서 잡담을 계속 했다.


“지금 저한테 농담하시는 거예요?”


커피잔을 든 여자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아랫입술을 잘근 씹은 윗이빨 끝이 빨갛게 립스틱으로 물들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짙은 눈썹에 코끝이 살짝 두툼한, 한 마디로 선량하고 성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당신은 저에게 과분한 여자였습니다. 화려한 외모는 물론, 씀씀이도요. 매달 기념일 마다 당신은 제가 드리는 선물의 가격으로 저의 사랑을 측정하고 평가하셨죠. 평범한 직장인인 저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다소 무리를 했고 지금은 마이너스 통장에 대출까지 해서 반년도 안 되서 5천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왜 그런 말을 당신이......”


“제발 조금만 더 참고 들어주십시오. 저도 느닷없이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서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로서는 더 이상 당신과의 사랑을 계속해 나갈 용기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모든 건 애초에 제 분수를 모르고 당신에게 고백한 저의 잘못입니다.”


여자의 얼굴을 울그락 푸르락하게 변했다. 여자의 입술이 좌우로 벌어지고 혀끝이 빨갛게 물든 윗이빨을 터치하며 막 ‘ㅆ’ 마찰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 남자는 말을 이었다.


“...라고 의뢰인께서 전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좀 더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시라는 말도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해요? 이별통보라면 당사자가 직접 해야지 찌질하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당장 그 사람 바뀐 전화번호 불러요. 하! 요새 연락이 좀 뜸하자 했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아니, 번호도 알려줄 필요 없어. 내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야겠어.”


여자가 벌떡 일어서자 남자가 다시 비굴한 자세로 납작 엎드렸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제발 그것만은 참아주십시오. 만약 그렇게 하셨다간 의뢰비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도 잘리게 되겠죠. 저는 당사자가 말하기 껄끄러운 이별통보를 대행해주는 ‘Break up’회사에 소속된 직원입니다. 이 일에 저와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남자의 말에 여자는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숨을 고르고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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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것뿐이에요? 저와 헤어지는 이유가? 고작 경제적인 이유 뿐?”


“사실은......”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좋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말씀드리지요. 사실은 그동안 당신이 만나왔던 그 남자분도 당신의 진짜 남자친구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사랑고백 대행회사 ‘Confession’에 소속된 직원이었습니다.”


“그...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최초 의뢰인’께서는 당신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고백 대행회사 ‘Confession’에 의뢰해서 남자직원이 본인 대신 당신에게 고백하게 한 후 당신과 데이트를 할 때마다 녹취록과 사진, 카톡 대화 캡쳐 이미지 등을 보내게 해서 대리 만족을 하셨던 것이죠. 물론 데이트와 선물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최초 의뢰자께서 대셨습니다. 결국 최초 의뢰자께서는 경제적인 부담감은 물론 당신을 속이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별을 결심하시게 된 겁니다.”


“그럼 이별 통보를 해도 저에게 고백을 했던 그분이 직접 해야죠! 무슨 놈의 연애가 이렇게 복잡해요?”


“그게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고백을 대행하셨던 분께서도 6개월 동안 당신과 만나시면서 개인적인 감정, 뭐 사랑 비슷한 그런 감정이 생기셨나 봅니다. 차마 직접 말하기 어렵다고 저희 쪽에 개인적으로 의뢰를 하신 것이지요. 비슷한 업계에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별은 저희 쪽이 전문이니까요.”


“...알겠어요. 어차피 당신하고 이야기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먼저 일어나세요. 저는 좀 앉아서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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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어서 저도 안타깝습니다. 부디 조만간 새로운 인연을 만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여기 저희 회사 명함이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저희가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이만.”


남자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커피값을 계산했다. 남자가 나가자 여자는 냅킨으로 윗이빨을 닦고 화장을 고쳤다. 새로 립스틱을 바르고 휴대폰을 거울삼아 입술을 두 번 뻐끔거린 찰나 휴대폰이 울렸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줍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일은 잘 마무리 되었나요? 역시 저랑 헤어지자고 그러죠? 제가 차이는 건 영 적응이 안 되어서요.


여자는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이별통보를 받은 후에도 ‘적절하게 화를 내면서도 쿨하게 보내주는 이미지’를 유지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시면 꼭 저희 쪽에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뒷모습이 아름다운 실연대행 전문회사 ‘Be dumped’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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