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오지 마! 정말로 뛰어내릴 거야.”
남자는 빌딩 옥상 난간에 맨발로 서서 말했다. 40살 정도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난 이제 끝장났어. 더 이상 직장에도 다닐 수 없어.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거야.”
남자는 난간 끝으로 조금 더 이동했다.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잠깐만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요. 그 까짓게 뭐 대수예요? 사람들은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물론 잠깐 창피하기야 하겠지만…… 그 뿐이라고요. 세상은 곧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갈 거예요. 죽으면 당신만 손해예요!”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다급하게 안주머니를 뒤져 경찰수첩을 꺼내 보여 주었다.
“날 봐요. 벌써 며칠째 실적이라곤 한 건도 못 올리고 있어요. 만날 상관에게 야단맞고 승진에서도 밀리고 있다고요. 이런 저도 용기를 내서 살아가잖아요? 아직 죽기에는 일러요.”
“닥쳐! 당신 같은 풋내기 경찰이 뭘 알아! 당신이 꽃뱀한테 속아서 몸캠을 당해 봤어? 애초에 내가…… 그 년…… 아니 그 놈한테 속아서 그런 영상을 보내는 게 아니었어. 그 놈이 벌써 내가 스스로 부끄러운 행위를 하는 영상을 회사사람들 SNS에 쫙 뿌렸단 말이야. 동료들도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뒤에선 모두들 나를 보고 수군거려. 여직원들은 아예 날 벌레 보듯 피한다구. 대출까지 받아가며 벌써 3천만 원을 부쳤는데 아직도 놈은 천만 원을 더 요구하고 있어. 오늘까지 입금시키지 않으면 그 영상을 우리 부모님, 형, 장인, 장모한테까지 뿌릴 거래. 더 이상은 빌릴 돈도 없어. 아니, 설령 돈을 구해서 입금한다고 해도 놈은 내 돈을 다 빨아먹으면 가차 없이 그 영상을 퍼뜨릴 거야. 이제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 으흐흐흑.”
남자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찐득찐득한 눈물이 남자의 주름골 사이를 지렁이처럼 파고들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하머터먼 남자의 옷깃을 잡을 뻔했다. 물리적인 접촉은 금지사항이었다.
“경찰에 신고는 한 거야?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하면 분명히 무슨 수가 있을 거야!”
“소용없어.”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남자 대신 대꾸했다. 위 아래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사내가 남자 뒤에서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가 매우 컸다. 약 190cm 정도?
“설마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그걸 안 알아봤겠어?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대개 추적이 불가능해. 경찰이 추적할 수 없는 바깥에서 미끼를 던진다고.”
검은 사내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를 끼운 검지와 중지 끝에는 맹금류의 부리처럼 억세고 구부러진 손톱이 달려 있었다.
“자신의 목숨에 대한 권리는 자기 자신에게 있어.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제3자가 살아라 말아라 할 일이 아니야. 나 같으면 결심이 흐려지기 전에 깨끗하게 결단을 내리겠어. 생각해봐. 당신이 부끄러운 행위를 하는 영상을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휴대폰에서 발견하는 장면을. 설령 이혼을 한다고 해도 평생 웃음거리고 남을 거야. 그런 수치를 당하면서까지 살고 싶어? 흐흐흐…….”
사내는 낮고 음산한 목소리로 웃었다.
“역시…… 그렇겠지?”
남자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위험했다.
“기다려요! 이 녀석 말은 듣지 마세요. 이 녀석은 당신을 부추겨서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死神)이에요. 당신이 죽으면 이 녀석만 기뻐할 거예요. 사신들은 그게 일이고 실적이니까.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자, 일단 거기서 내려옵시다.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자고요. 제가 이쪽 방면으로 도움을 주실 분을 알고 있어요. 휴대폰 해킹전문가거든요.”
막 뛰어내리려던 남자의 다리가 멈칫했다. 검은 사내가 짜증난다는 듯이 콧등을 찡그렸다.
“소용없어. 방금 전 이 남자의 초등학생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상을 휴대폰으로 받았더군. 어서 돈을 부치라는 마지막 경고야. 이봐, 당신은 오늘 집에 가서 아들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겠어? 이건 시작에 불과해. 이게 바닥인 것 같지? 천만에, 시간이 지날수록 끝이 없는 바닥의 바닥, 지옥의 지옥을 보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내가 왜 그때 뛰어내리지 못했을까 후회해도 소용없어. 기회는 지금뿐이야.”
으어어어…… 검은 사내의 말을 들은 남자는 기묘한 신음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난간에 쭈그려 앉아 흐느껴 울었다.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던 남자는 결심을 굳힌 듯 무서운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위험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알고 있어! 내가 해킹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요! 놈들의 IP주소를 역추적해서 영상을 삭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리석은 생각은 집어치워요!”
“그…… 그게 정말이야?”
남자가 의심스런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치료약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불치병 환자 같은 표정이었다.
“정말입니다. 해외에 있어도 인터폴과 협력하면 잡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럼 당신이 입금한 돈도 되찾을 수 있어요! 어서 내려와요.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저랑 같이 갑시다. 어서요!”
나의 끈질긴 설득에 남자는 마침내 자살을 포기하고 난간에서 내려왔다. 검은 사신은 ‘쳇, 모처럼 한 건 올릴 수 있었는데 저 놈이 또 방해하는군’ 하고 중얼거리며 검은 모래가 되어 회오리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그런데 이걸 어쩌죠?”
내 말에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경찰서로 향하던 길이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나는 남자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새로 생긴 채팅창에는 남자의 모든 지인들이 초대되어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동영상 파일이 올라와 있었다.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지인들의 글이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껍데기만 남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지나가는 자동차에 몸을 날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즉사했다. 나는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오늘 날짜에 ‘1’이라고 기록했다. 날카롭고 구부러진 손톱 때문에 쓰기가 불편했다. 모처럼의 일거리를 빌딩 투신 담당인 놈한테 넘길 수는 없었다. 나의 직업은 사신(死神). 아무도 추적할 수 없는 바깥에서 미끼를 던져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이다. 물리적인 접촉은 할 수 없지만 말이나 문자로 꾀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생긴 휴대폰은 나에게 정말 편리한 도구였다.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한 줌의 검은 재가 되어 회오리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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