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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종결혼기

by 아이디어셀러

“아무래도 가장 무난하게 포유류부터 접근하는 것이 좋겠죠?”


웨딩 컨설턴트는 컴퓨터 화면에 사진을 띄웠다. 크고 검은 눈동자와 윤기를 머금은 도톰한 입술.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붉은 머리칼은 풍만한 가슴께를 덮고 있었다. 디즈니 만화 속 인어공주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보다 아름다운데요? 분양가격은 어떻게 되죠?”


“놀랍게도 단돈 2천 셀라입니다. 현재 연령은 만 5세입니다. 성장속도가 빨라서 한창 무르익을 나이죠. 평균수명도 50세 정도라서 원하신다면 평생을 함께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최초 분양가격은 5천 셀라 선이었는데요 전 주인으로부터 한 번 유기당한 기록이 남아서 파격할인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아니, 저렇게 아름다운데도 유기를 당했다고요? 폭력 성향이라든가 치명적인 질병이라도……?”


“전신 프로필 사진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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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턴트가 마우스를 클릭하자 전신 사진이 떴다. 상반신은 모델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지만 하반신은 다리 대신 돌고래와 같은 미끈한 꼬리가 달려 있었다.


“마멀레이드는 인간과 돌고래의 유전자 합성으로 태어난 신품종입니다. 모티브는 당연히 ‘인어공주’였죠. 보시다시피 상반신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하반신은…… 그 뭐랄까, 많이 다르죠? 첫눈에 반하셨던 먼젓번의 신랑께서도 이 점을 감수하고 분양받으셨습니다만 아무래도 지속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신체구조상 계속 수족관 속에서 생활을 해야 하고 특히 밤에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막대한 위자료를 지불하시고 1년 만에 유기신청을 하셨습니다.”


“하긴 그런 조건이라면 저라도 망설여지는군요. 다른 품종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다음으로 화면에 나타난 것은 고양이상의 미녀였다.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고양이상이 아니라 정말로 고양이처럼 회동그랗고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얼굴피부도 짧은 얼룩 털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조그마한 분홍색 코에서 건강한 습기가 반짝거렸다.


“이번 품종은 ‘샴’입니다. 인간과 샴고양이의 유전자 합성으로 탄생했죠. 아무래도 털이 있다 보니 마멀레이드보다는 애니멀적인 느낌이 강하죠? 털을 선호하는 고객 분들은 아주 좋아하십니다. 성격도 온순하고 특히 애교가 많습니다. 턱을 간질이면 눈을 감고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아주 사랑스럽죠. 지능지수도 60~70선으로 높은 편이어서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합니다. 요리 같은 복잡한 작업은 힘들어도 잘 훈련시키면 택배를 받거나 청소를 하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분양가격은 3,500셀라입니다.”


“주의할 사항은 없나요?”


“절대 물로 목욕을 시키시면 안 됩니다. 흔치는 않은 일입니다만 샴을 목욕시키려다가 발톱에 공격당한 고객님도 계셨죠. 뉴스에서도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경동맥이 잘려서 출혈과다로 사망하셨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샴은 안락사를 당했죠. 뭐 이 점만 주의하시면 무난한 편입니다. 밤에 잠자리도 인간과 잘 맞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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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시기는 서기 2070년이다. 여성의 성비가 줄어들고 여성의 권리가 강화됨에 따라 나를 포함한 하위권 남성들은 배우자를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평범한 여성들도 눈이 높아져서 최상류층 남성이 아니면 결혼상대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동남아 국제결혼도 이제는 중상류층 남성이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많은 남성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웠다. 심리적인 외로움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자연스러운 성욕의 처리였다. 포르노사업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성범죄가 급증하자 정부가 제시한 대안은 휴매니멀 웨딩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를 조합해서 여성을 대체할 수 있는 신품종을 만들어낸 것이다. 휴매니멀 웨딩은 반려동물을 원하는 수요와 배우자를 원하는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켰다. 꼭 하류층 남성이 아니더라도 모든 걸 맞춰줘야 하는 인간여성과의 관계에 염증을 느낀 중상위권 남성들도 휴매니멀을 찾았다. 예전에는 수간(獸姦)이라고 해서 반인륜적인 행위로 여겨졌던 것이 어느새 합법적인 결혼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동성결혼의 합법화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휴매니멀 웨딩의 윤리성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순기능이 역기능을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음, 저는 샴은 너무 도도해 보여서 별로군요. 혹시 개과는 없습니까?”


“물론 있지요! 개를 좋아하신다면 고객님께 딱 맞는 품종이 있습니다. 현재 저희 샵에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루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컨설턴트가 안쪽으로 신호를 보내자 하얀 모피코트를 입은 여자가 모델워킹을 하며 걸어왔다. 미니스커트 라인까지 내려온 풍성한 털 밑으로 아름답게 뻗은 다리가 드러났다.


“루시는 이번에 새로 개량된 품종입니다. 애완견 스피치의 유전자를 기본으로 몇몇 견종의 유전자를 모자이크 조합했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모두 인간과 같지만 몸통 부분은 털로 덮여 있습니다. 요즘 독신 애견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분양가격도 2,500셀라로 합리적입니다.”


자세히 보니 모피코트라고 생각했던 것은 휴매니멀의 몸통에 난 털이었다. 사실상 벌거벗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얼굴도 인간과 거의 흡사해 보였다. 아니, 살짝 뭉툭한 코끝과 인중에 삐져나온 몇 가닥 수염을 제외하면 여자 중에서도 상당히 예쁜 축에 속했다. 그 정도는 코스프레를 한 셈치고 귀엽게 봐 줄 수도 있었다.


“개에서 파생된 품종답게 지능도 우수한 편입니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밤에 이것저것을 시킬 수 있죠.”

컨설턴트는 내 귀에 대고 음흉하게 속삭였다.


“특히 핥는 걸 아주 잘 한답니다. 흐흐…….”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조건이었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쪽으로 하겠습니다. 분양절차는 어떻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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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계약서를 보시면 반드시 지키셔야 할 법조항들이 있습니다. 최근 휴매니멀의 인권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다소 까다롭습니다. 우선 연 수입 5,000셀라 이상으로 휴매니멀을 부양할 고정수입이 있으셔야 합니다. 또 일 년에 2차례 이상 종합정기검진을 받으셔야하고 17종의 유행병에 대한 예방접종은 필수입니다. 일 년마다 정부에서 실시하는 학대사실조사에 성실하게 응해주어야 하고요 주거환경의 온도, 채광, 통풍은 법에서 정한 기준을 준수하셔야 합니다. 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유기조항인데요, 만약 휴매니멀을 분양한 후 유기할 경우-즉 인간으로 치면 이혼이 되겠죠-분양가의 2배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휴매니멀 인권보호위원회에 납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또…….”


“잠깐 잠깐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무슨 조건이 이렇게 까다로운 거죠? 이러면 인간여성과 결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나는 진절머리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컨설턴트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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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같으신 분들을 위해서 새로 나온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인간의 유전자를 조합한 ‘휴먼트리’ 상품인데요, 다행히 아직 식물 쪽은 인권단체의 관심이 미치지 않아서요. 파리지옥을 개량한 식육식물같은 경우는 제법 리드미컬한 움직임도 가능하죠. 어디 한번 사과인간의 향긋한 냄새를 맡아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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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https://open.kakao.com/o/gKeqI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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