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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by 아이디어셀러

여인은 대담하게 사장의 지갑에 손을 뻗었다. 여인이 사장의 눈앞에서 지갑을 열고 카드를 훔쳐 가는데도 사장은 서류만 읽고 있었다.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서서 사장실을 나갔다. 사장은 문 닫히는 소리에 잠깐 입구 쪽을 돌아보고는 ‘어디서 바람이 부나’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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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처음부터 투명인간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인의 직업은 화장실 청소부였다. 남자화장실을 청소할 때도 남자들은 여인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뻔히 옆에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서 있는 곳에 물걸레질을 할 때 수캐처럼 번갈아서 한 쪽 다리를 들어주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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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파견업체의 지침상 여인은 사람들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존재였다. 지저분한 용모가 회사 이미지를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청소 작업은 회사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시간과 퇴근한 후인 심야시간에 이루어졌다. 식사는 비좁은 대기실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워야 했다. 양복을 입은 회사원들과는 같이 이야기할 수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없었다.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계단으로 숨어 다녀야 했다. 이런 과정을 수년간 겪으면서 여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물론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듯이 물리적으로 온몸이 투명하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인식기관에 감지되지 않는 법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여인이 처음부터 도둑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인에게는 대학생 딸이 있었다. 남편 없이 혼자 힘들게 키운 딸이었다. 여인의 딸은 선생님에게 받은 문제집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번듯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비싼 등록금이 문제였다. 아무리 여인이 일을 열심히 해도 100만 원 남짓한 여인의 월급으로는 생활도 빠듯했다. 친구들이 멋진 새 옷을 입고 미팅에 나갈 때도 여인의 딸은 고등학교 때 입던 낡은 옷을 입고 복사실에서 하루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번 돈을 합쳐도 한 학기에 600만 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을 대기는 무리였다. 여인의 딸은 가난한 엄마가 부끄러웠고 생활고에 지친 여인은 딸이 짐스러웠다. 둘은 학비 문제로 몇 번 다툰 후엔 집에서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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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에 쪼들린 여인은 존재감을 지우고 사장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 여인은 딸에게 ‘빌려온 돈’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은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인의 존재감은 은행 CCTV에도 감지되지 않았고(정확하게는 CCTV를 보는 사람들의 인식에 감지되지 않았고) 사장의 지갑에 몇 번 손을 댄 이후에도 여인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감을 얻은 여인은 그 후로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상습적으로 사장의 카드를 슬쩍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인은 현금인출기에서 600만 원을 인출해서 지갑에 넣었다. 돈을 구해 온 날은 모처럼 딸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여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수진아, 나와 봐라. 엄마가 등록금 구해왔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특별 보너스를 줬지 뭐니?”


여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을 찾았다.


“거짓말 마.”


여인은 깜짝 놀랐다.


“나 그 돈 어디서 온 건지 다 알고 있어. 사장한테서 훔쳐 온 거지?”


“네…… 네가 그걸 어떻게……?”


“대학교 4년 내내 과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나는 엄마처럼 존재감을 지우는 법을 배우게 됐어. 옷도 지저분하고 복사실에서 일만 하는 나랑은 아무도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청소부 월급에 매번 그 많은 돈을 구해 오는 게 수상쩍어서 얼마 전부터 투명인간이 되어 엄마 뒤를 밟았지.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어.”


“하지만 네 눈에는 내가 보였니?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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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투명인간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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