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시나리오대로만 하자. 오바하지 말고. 서툴게 맨 넥타이가 자꾸 울대를 움켜쥐었다. 벌써 뒷덜미에는 진땀이 먼지와 섞여 진득한 점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호두 먹고 물 안 마신 것처럼 목소리가 자꾸 잠기고 갈라졌다. 환촉(幻觸)이라고 해야할까. 교실의 칠판과 백묵은 모두 전자칠판으로 교체되면서 사라졌지만 백묵가루가 성대에 들러붙는 것 같은 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설마 넥타이를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왼쪽으로 살짝 비틀어진 넥타이가 자꾸 신경 쓰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형우는 낭독을 마치고 주욱 눈길로 교실을 쓸었다. 당장 바닥에 널부러진 휴지 몇 개가 촉수에 걸렸다. 니놈들한텐 내가 두 손 다 들었다. 오늘만큼을 청소를 깨끗이 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더구나 시나리오에는 없던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수리들이 보였다. 목이 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생수병이라도 준비해 두는 건데. 아이들을 보려고 해도 시원찮은 자동카메라처럼 자꾸만 초점이 교실 뒤쪽에 가서 맞았다. 장학사, 교장, 교감, 연구부장, 기타 선생들...직급 순서대로 피아노 건반처럼 규칙적으로 앉아있었다. 수업 중에 유머를 해도 교장이 웃어야 교감도 웃고 다른 선생들도 경력 순서대로 따라 웃는다. 그 중 푹 꺼진 검은 건반 하나가 공개수업지도안에 자꾸 빨간펜을 가져다 대었다. 스크린톤을 입힌 것처럼 가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남들의 반 토막 밖에 안 되는 이사도라 교감이었다. 스타워즈의 요다처럼 생기긴 했지만 외국인은 아니었다. 24시간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감시한다고 해서 별명이 ‘이사도라’였다. 열 받으면 별명이 살짝 바뀌기도 했다.
“이 시는 197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인 김지하 시인이 쓴 시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시절,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있습니다. 크큼, 여러분은 ‘민주화’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젠장 말 그대로 국어책을 읽고 있구나. 평소에 수업할 때 존댓말도 좀 쓸 것을. 그나저나 일권이 어딨어? 일권이. 시나리오대로만 가자니까 자식들아. 리허설도 했잖아. 아이스크림도 쐈잖아. 오늘만 무사히 끝나면 피자다.
그치? 기훈아. 기훈아아?
“전라도 홍어”
누군가 툭 뱉은 말에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기대했던 기훈이였다. 이어서 ‘전땅크로 밀어부쳐야 한다’느니 ‘좌좀 새끼들...’같은 독백을 위장한 방백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그딴 건 익명게시판에나 쓰라고! 등줄기가 땀으로 펑펑하게 젖어왔다. 병신같은 놈의 병신같은 소리 덕분에 형우는 오늘 처음으로 장학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 몇 올로 간신히 덮은 널따란 이마에 전광판처럼 ‘이게 지금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입니까’라는 글자가 폰트254로 한 글자씩 점멸했다. 이사도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부터 ‘야마도라’다.
서울 성북구에 있는 H고등학교는 사립 미션스쿨이었다. 야트막한 야산 위에 붉은 벽돌과 담쟁이 넝쿨로 직조된 4층짜리 본관건물이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기립해 있었다. 그 오른쪽으로 우중충한 회색의 기숙사 건물이, 왼쪽으로 새로 지은 흰색 신관건물이 한 쪽만 씻은 비둘기 날개처럼 달려 있었다. 씻은 날개 4층에 마련된 공개수업 평가 회의실에서는 이사도라가 야마도라가 되고 멀쩡한 사람이 눈 뜬 채 병신이 되는 놀라운 마술이 펼쳐지고 있었다.
“평소 수업 중에 자주 하시나 보죠?”
장학사는 매 문장마다 붉은 펜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수업지도안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물었다. 차라리 티 안 나게 붉은 색으로 인쇄할 걸. 불독같아 보이는 외모와 달리 꽤 꼼꼼한 성격이다. 나중에 교장 되면 여학생들 치마길이 깨나 잡게 생겼다.
“네?”
“정치적 발언 말입니다. 전라도니 좌좀이니 하는...”
“아...그렇지 않습니다. 그 놈들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주 노는가본데 지들끼리 게시판에서 하는 말들을 아무 생각 없이 던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형우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개수업 지도교사였던 형우를 포함해 원형으로 배열한 책상은 언뜻 수평적인 관계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집게처럼 양쪽에서 형우를 압박하고 있었다. 일권이 놈의 말 이후로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야마도라가 너 언젠가 이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장학사가 아니라 장의사였다.
“어쨌든 위험한 발언은 주의해 주세요. 마침 선거기간이고 하니 교육청으로도 종종 학부모 신고가 들어옵니다. 흠...목소리 톤은 좋으시더군요. 뭐 다른 것들은 따로 말씀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구요.”
장학사는 의사가 실패한 개복수술을 덮어버리듯이 내 수업지도안을 서둘러서 파일철에 끼워 넣었다. ‘말씀 드릴 필요’가 아니라 ‘말할 가치’가 없어서겠지. 어쨌든 이렇게라도 빨리 지나가게 돼서 다행이었다. 그래 어쩌면 꽤 괜찮았는지도 몰라.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그렇지? 형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장학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형우가 아니라 한선생이었다. 형우와 함께 오늘 공개수업을 한 체육교사로 나이는 형우보다 1살 적은 34이었다. 총각치고 꽤 많은 나이였지만 외모도 패션도 젊어보였기 때문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당당히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키도 형우보다 10cm가 컸다. 괜찮다. 키도 숫자에 불과하니까.
“뭐랄까.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교육과정에 충실한 그런 수업이더군요.”
장학사의 마빡에서 ‘당신 완전 끝내주던데?’ 라는 글자가 폰트300으로 점멸했다.
“저도 장학사 6년째지만 솔직히 체육교과에서 이런 수업을 보긴 처음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장학사랑 학부모 앉혀놓고 공개수업으로 마라톤을 시키더라구요. 땡볕에 세 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있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허허허허”
누구나 알고 있는 교육계에 내려오는 전설적인 뻥이었지만 한선생은 적당히 놀라는 척 순진을 떨며 비위를 맞춰주었다. 제법 처세를 아는 사람이다. 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을 때는 좀 얼빵한 척 해야 미움을 덜 산다. 그 모습을 보고 박선생이 천천히 속눈썹을 두 번 깜박였다. 교과서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눈송이가 내려앉아서 잠시 쉬어갈 법 한 길고 짙은 속눈썹이었다. 이건 괜찮지 않다. 저 눈빛은 숫자에 불과하지 않으니까.
대구 반야월 곱창집이 대구가 아니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부산 사하구에 춘천 닭갈비가 있거나 제주도 서귀포에 태릉 숯불갈비가 있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맛이 꽤 괜찮다는 점이었다. 형우는 막 불판에서 몸을 뒤틀기 시작하는 곱창을 집게로 들고 가위로 잘랐다. 곱이 질질 흘러나오는 구멍이 묘하게 음란했다. 곱창 옆구리에 붙은 기름이 자글자글 타면서 고소한 냄새가 콧구멍에 기름칠을 했다.
“도대체 어쩔 생각이야?”
경미가 눈알을 모로 세웠다. 마스카라처럼 길디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너까지 왜 이래? 나 안 그래도 오늘 줄줄이 박살나서 기분 별로야. 광고에서 안 봤어? 이럴 땐 그냥 술 마시게 내비뒀다가 계산할 때 카드나 찔러 주는게 최고라니까.”
형우는 곱창 하나를 쌈장에 푹 찍어서 질겅질겅 씹었다. 어디보자...곱창 2인분 18000원, 소주 2병 6000원, 고추장삽겹살 1인분 9000원.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술 맛 떨어지게 잔소리다.
“공개수업평가 중요한 거 알잖아. 수치화되진 못해도 장감한테 인상평가 받는 거 몰라? 사립에서 꼰대들한테 한번 찍히면...”
“몰라. 알아서들 하라 그래. 안되면 다른 학교로 메뚜기 뛰지 뭐. 그래도 국어과목인데 어디 기간제 교사 자리 하나 없을까봐. 벌써 경력이 몇 년인데.”
“도대체 그 놈의 메뚜기는 언제까지 뛸 건데? 그러다가 송장메뚜기 되겠다.”
“경미야”
“이름 막 부르지 마. 여기 학교 근처야. 옆자리에 학부모 있을지도 몰라. 이 집 사장일지도 모르고.”
“네, 박선생님. 누군 날 때부터 기간제였겠습니까? 저도 임용보고 발령받고 정교사 되보고 다아~ 해 봤습니다. 또 그때 얘기 꺼내야 하겠습니까?”
“그놈의 성질 못 참아서 자초한 일 아니었어? 억울하면 임용을 다시 보든가.”
“그때랑 달라. 요새 국어과 경쟁률 40대 1 넘어간다. 한번 봤던 시험이라지만 일하면서는 힘들어.”
“그럼 좀 진득하게 붙어서 점수 따고 정교사 되든가! 사립 올 때부터 그럴 생각 아니었어? 그냥 용돈 벌러 온거야? 오빠가 아직도 과외나 하러다니는 대학생인 줄 알아? 기간제 자리 났다고 학교에 오빠 소개한 내 체면은 뭐가 돼?”
“...”
아까운 곱창이 새카맣게 타들어갔지만 뒤집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좋은 곱창이었습니다. 아멘.
“나 올해 31야. 계속 기다리기 힘들어. 집에서 물어오는 선자리 계속 거절할 명분도 없고.”
“그래서 요샌 그 멀대가 바래다주디? 명분 세울려고?”
퉁탕. 박선생이 벌떡 일어서며 의자가 뒤로 쓰러졌다. 작은 코가 발름거리고 기다란 속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경미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장 난 가로등이 하나 있었다. 이빨 빠진 키보드처럼 딱 그 자리만 불이 나가서 경미를 바래다 줄 때마다 입술 도장을 찍던 곳이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씩은 출근 도장을 찍었다. 며칠 전 그 곳에서 경미의 늘씬한 다리와 한선생의 길다란 다리가 나란히 서 있는 걸 보기 전까지는. 형 형 하고 따르던 새끼가 뒤통수를 쳤던 것이다.
“적당히 좀 해. 오늘은 나도 받아줄 만큼 받아줬어.”
“그래서요? 제 점수는 몇 점이죠? 정교사 박선생님?”
“이...”
좀 후달리긴 하지만 남자가 가오가 있지. 밀릴 때 악셀 한 번 더 밟아줘야 한다.
“먼저 정교사 됐다고 너 지금 나한테 유세 부리는 거야? 정교사는 정교사끼리 만나야 급이 맞는다 이거지?”
“누가 꼭 정교사 되래? 남자나이 35이면 이제 평생 걸고 할 일을 좀 찾아야 할 거 아냐.”
경미가 지갑을 들고 팩 돌아섰다. 같이 임용 준비할 때부터 싸워도 지갑은 챙겨서 일어나는 참 고마운 여자다. 경미가 카드를 긁는 동안 형우는 곱창 한 점을 소주와 함께 감기약처럼 털어 넣고 씹었다.
땅이 물컹거렸다. 발을 들면 땅도 같이 빨려 올라오고 발을 디디면 땅도 같이 꺼졌다. 단합 안 되는 반이 단체 줄넘기를 하는 것처럼 다리가 자꾸 꼬였다. 먼저 정교사로 자리를 잡은 경미의 소개로 이 학교에 온 이후로 이렇게 술걸레가 되도록 마시긴 처음이었다. 술이 좀 들어간 날에는 어김없이 그날 일이 떠올랐다. 재수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서울 강북지역의 한 남학교에 신규발령을 받은 지 두 달째로 접어들던 때였다. 그날따라 유달리 술병을 앓았다. 참교육의 꿈에 들뜬 신규에게 학교는 그야말로 쥐뿔도 모르고 기어 올라간 종합격투기 링이나 다름없었다. 형우만 빼고 모두 선수였다. 그것도 두 세 체급 위의. 3월 한 달동안 학교라는 거인 밑에 깔려서 6기통 피스톤처럼 밀려오는 업무와 수업의 펀치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냈다. ‘어린 것이 꿈을 꾸었구나’하고 기권패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공이 울렸다. 세컨을 보고 있던 교무부장이 노고를 치하한답시고 사 준 술이 좀 과했던 모양이다. 아침 출근길부터 그로기상태였다. 온 몸의 모공에서 알콜이 포자처럼 휘발되었다. 조회시간에 앞줄에 앉는 눈치 빠른 녀석들이 코를 킁킁거리고 속닥거렸다. 1교시는 교과서 가지고 온다는 핑계로 화장실가서 한번 토하고, 2교시는 분필 가져온답시고 화장실 가서 두 번 토했다. 그렇게 온 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자 서 있기도 힘들었다. 급기야 3교시는 영화감상을 하고 4교시는 자습으로 돌리려는 찰나,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그냥 진도 나가시죠.”
맨 뒷자리에서 다리 꼬고 앉은 4반 부실장이 시크하게 툭 던졌다. 평소 같으면 웃고 넘길 수 있는 것도 그날따라 신경이 곤두섰다. 내심 찔린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논리가 지배하는 교실에서 선생이 위인 것 같아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업을 충실히 했을 때 이야기였다. 날림으로 하는 수업을 걸고 늘어지면 칼자루는 100% 학생이 쥐게 된다. 나 암바 제대로 걸렸어. 살살 좀 해줘.
“야야 오늘은 각자 복습 좀 하자. 샘 힘들다. 좀 봐줘라”
그나마 이정도가 형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교였다. 도저히 말싸움을 할 상태가 아니었다. 저 짧은 말을 하는 동안에도 누가 위장을 쥐어짜는 것 같이 끅 끅 신물이 올라왔다. 그런데 탭을 쳤는데도 이놈이 기어이 한 번 더 당기고 말았던 것이다.
“월급 받으시잖아요?”
뚝. 그 말에 그만 신경이 끊어졌다. 지금 4월인데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간을 보려고 들어?
“야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앞으로 나와.”
그리고는 건들거리며 나오는 녀석의 가슴팍을 프론트 킥으로 날려버렸다. ROTC할 때부터 신참들 길들일 때 곧잘 쓰던 방법이다. 물론 소원수리 꼰지르면 좃되는 거지만 그전에 따로 불러서 소줏잔에 넣고 슬슬 돌리면 누구보다도 잘 따르는 꼬붕이 되었다. 그날 발차기를 날린 것도 아주 이성을 잃었다기보다는 짜장면 곱빼기 값 정도는 계산에 두고 했던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하필 그 놈이 새가슴이었던 것이다. 가슴팍을 된통 차인 놈은 쓰러져서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하마터면 학기 초에 찍은 증명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쓸 뻔 했다. 그 사건으로 형우는 장기간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징계가 끝난 후에도 복귀하지 않았다. 차라리 은퇴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한번 부서진 멘탈이 조립이 안 됐다. 싸가지 없다는 이유로 16년 밖에 안 산 녀석을 골로 보낼 뻔 했다. 도저히 더는 아이들 앞에 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후로 과외와 학원가를 전전하며 2년을 허송세월한 끝에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고, 지금은 아이들 앞에 ‘정교사’로 서기 위해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쁜 년...”
갑자기 경미가 못 견디게 보고 싶어졌다.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다가 싸다구라도 몇 대 맞아야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싸운 후엔 언제나 그랬듯이 알몸으로 경미의 포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어야 잠이 올 것 같았다. 일 년 일 년 간신히 갱신해 온 관계가 이제 식당 아줌마의 매니큐어처럼 망가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딱 일 년만 더 재계약하자. 언젠가 무기계약 될 지도 모르지. 경로를 인식한 걸음이 나를 경미의 원룸 쪽으로 이끌었다. 가로등이 꺼진 어둠 속을, 뼈가 녹은 두 다리가 심해어의 촉수처럼 흐느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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