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엮는 나의 삶, 2017년 2월
사랑하는 아내 OO씨!
내년이면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30년이 됩니다. 짧은 인생에서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만한 기간을 함께했습니다. 물론 당신을 만난 게 79년 여름이니 사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해 왔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 남은 생도 함께할 겁니다.
어제는 신문사에서 스냅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고 해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한참 뒤졌습니다. 나 혼자 있는 사진이 드물어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내 옆에는 늘 당신이, 당신 옆에는 언제나 내가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낼 수 없는, 혼자로는 행복할 수 없는, 혼자로는 존재의 의미가 없는 연리지가 되어 버렸던 겁니다.
어젯밤에는 어려운 집안일 때문에 힘들면서도 당신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이 사는 것이라고. 하루하루 이렇게 넘어가는 것이 삶이라고.” 당신의 이 말은 우리가 젊을 때 좀 더 행복하려고 애쓰던 그런 희망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체념도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세월과 결합하여 행복도 고통도 기쁨도 슬픔도 하나로 녹여내어 연리지처럼 우리의 삶을 붙여버린 것입니다. 어느덧 우리는 기뻐 날뛰는 행복을 만들기 위해 찾아다니기보다 한자리에서 묵묵히 서로를 부둥켜안고 함께 풍진을 견디면서 느끼는 따뜻한 체온만으로도 흐뭇해하는 연리지의 행복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난 일 년 참 수고하셨습니다. 언제나 나의 앞길만 헤쳐 나가는 데 신경 쓰느라 당신과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소홀한데도 나의 길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공인의 길이라 믿고 묵묵히 후원하고 견뎌줘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세상에 떳떳하려 애쓰는 나로 인해 초래되는 불편하고 부족한 삶을 견뎌주어 고맙습니다. 오히려 간혹 편해지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려는 나를 따끔히 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 유엔공무원으로 새출발을 한 지 열흘, 공들여 다시 구한 공직이니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주변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보, OO씨, 사랑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나와 당신을 한 하늘 아래 같은 시간에 있게 해 준 섭리에 감사합니다.
2017년 2월, 당신의 사랑 재근 드림
@2017년 2월은 정부에서 33년의 공직을 마치고 1년의 UN채용과정을 거쳐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으로 새로운 공직을 출발한 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