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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피 Jun 14. 2024

12. 작은 일상의 회복(하)

소소한 루틴 만들기

나는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점점 더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동료들은 나를 J형(계획형)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내 속은 정반대이다.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아붓고 나면, 퇴근 후엔 그저 빈 껍데기처럼 무기력해 엉망진창인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에야 겨우 얻은 자유건만 그 시간을 즐길 만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회사 밖을 나서서 ① 퇴근길에 친구들과 톡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탐험하고, ②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③ 가족들과 일상을 나누거나 친구와 통화를 하고, ④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하고 ⑤ 마스크팩을 붙이고 핸드폰을 하면서, ⑥ 잠드는 삶이 보통이라면 나는 ①번에서 ⑥번으로 바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이 모든 것들에 취미까지 더해져서 사는 사람들도 있을 테다. 그들과 내게 공평하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내겐 모든 것이 너무나 번거롭고 내 휴식을 방해하는 일들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배 안고파요." 이 말을 남기고 암막커튼을 치는 일이 내 하루의 마침표였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누워버리는 삶. 마치 번데기처럼 이불속에서 웅크려 있는 나. 그렇게 무기력한 날들이 흘러갔다.


어느 날, 엘레베이터에서 본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만간 누군가의 손에 쓰레기통으로 옮겨질, 젖었다 말라서 찌그러진 종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거울 속 나를 마주하고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진짜로 세상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나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평범하게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바람과 불안한 희망이 뒤섞인 상태로 우울감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루틴의 상관관계


여러 글을 읽어보니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있어서 심리학이든 뇌과학이든 반복되는 일상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극에 예민한 사람들이 루틴을 통해서 삶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고 거기서 점점 자기 효능감이 생기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했다.


"일상에서 일정을 만들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정을 따르는 것은 구조와 안정성을 제공하여 일과 목표를 달성하기 쉽게 만듭니다. 또한 일정을 따르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하루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규칙적인 일정은 더 나은 수면, 향상된 생산성 및 전반적인 웰빙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 아티클 <성공적인 루틴 만들기: 효과적인 일정 계획의 중추>


습관, 루틴, 매너리즘 등의 언어로 쓰였지만 여러 책과 아티클이 오랜 시간 의지가 없던 나를 설득했다. 이윽고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포기하듯 사는 삶을 벗어나보기로 드디어 결심했다.


마음을 먹었으니 다음은 어떤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지 생각해 볼 차례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건 내 박약한 의지에 간헐적 성공도 어려울 듯싶었다. 반복된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의 관계처럼 작은 성공과 실패를 수없이 경험하게 되겠지만 갑자기 몸짱이 되는걸 꿈꾸는 건 아니니까 소소 것들로 시도해 보았다.


"습관 쌓기의 핵심은 해야 할 행동을 이미 매일 하고 있는 행동과 짝짓는 것이다. 이 기초적인 구조를 완전히 습득하고 나면, 작은 습관들을 함께 연결시킴으로써 더 큰 습관을 쌓을 수 있다." -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하루아침에 정하지는 않았다. 내게 맞는 것들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를 실행해 보면서 필한 것, 해야 하는 것, 재미있는 것, 버거운 것들을 계속 테스트했었다. 사실은 실천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요요처럼 몇 번이고 일상이 무너져버렸었다. 건강한 습관과 루틴을 만드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오늘의 이 글은 나의 다짐의 말이다.




나의 희망 루틴 목록


1. 아침 : 명상 영상으로 잠 깨기

아침에 날 깨우는 알람이 울리면 비몽사몽간에 명상 영상을 켠다.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하루가 나쁘지 않다. 아직은 진짜 명상도 못하고 요가 스트레칭도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조금 더 발전해서 영상을 실행할 수 있길. 긴장의 연속인 삶을 사는 데 있어 내가 가장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시간이다. 소요 시간은 15분.


2. 화장실을 가는 시간 : 거울 보고 스트레칭하기

화장실에 길때마다 손을 위로 뻗어 스트레칭을 하변서 의자에 앉아서 고통받았던 허리를 펴준다. 좌우로 골반을 움직여본다. 마지막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어도 거울을 보며 스트레칭하고 억지로 광대를 올려 스스로에게 미소 지어본다. 소요시간은 20~30초.


3. 퇴근길 : 집이 코앞이지만 산책으로 환기하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길을 돌아 산책을 한다. 해지는 저녁을 보거나 길가의 나무나 꽃을 감상한다. 회사-집의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고,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도 하루의 끝맺음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다. 집에 꿀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 시간은 상황 따라 조절한다. 중요한 건 내 기분이다.


4. 걸을 때 : 핸드폰 대신 하늘을 보

걸을 때는 하늘과 주변 풍경을 바라보려고 한다. 구부정한 허리와 굽은 어깨로 핸드폰을 보면서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습관을 바꾸고 싶었다. 걸을 때 하늘을 바라보는 이 작은 습관은 자세에도 기분 전환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을 비울 수도 있고, 멋진 구름이나 낮달을 발견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5. 퇴근 후 : 씻기 전에 몸을 달구기

옷을 벗고 맨몸과 외기가 닿는 것도 불쾌한 자극으로 느끼는 날이 너무 많다. 그래서 샤워 전에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하기로 다짐했다. 허리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체력을 키우는데 사실 가장 필요한 습관이기도 하다. 덕분에 씻는 것도 자극이 아니라 운동으로 달궈진 몸을 상쾌하게 만들고 피로를 씻어내는 기분 좋은 행위로 바꿔보려 한다. 그러면 샤워는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어려운 것은 꾸준하게 운동을 실행하는 것이다.


6. 주말 : 이틀 중 하루는 바깥을 나가 보자.

주말 이틀 내 누워있는 것이 가장 편안했던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 오히려 장시간 누워있는 게 더 컨디션을 떨어뜨린다는 걸 깨달았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이 회사로 출근할 때뿐이었던 것에 즐거운 경험을 더 넣어보기로 했다. 이유 없이 실행하기 어려워 강제성을 넣었다. 지금은 2년 동안 고민만 했던 한 달 꽃꽂이 수업을 신청했다. 취미가 되면 좋을 일이다.




누군가는 저것들이 뭐 별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러나 다들 대단한 행복보다도 평범하게 일상을 즐기면서 살고 싶어 하지 않던가.


중요한 건 더 이상 회사 일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내 삶의 구심점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 속에 숨겨진 즐거움을 발견하고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법를 배워하는 것이 나의 새로운 목표이다. 하루하루 작은 습관들을 쌓다 보면 만족하는 일상을 살아보는 때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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