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라는 감정에 집중해 본다. 우리는 좋아하는 게 많다고 해도 생각보다 '좋은 기분'을 일상에서 자주 느끼지는 못한다. 언젠가부터 내 하루의 목표는 '오늘도 즐겁게'가 아닌 '오늘은 무사히'가 된 지 오래다. 나를 편안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행위에 집중해 보자는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난주 다녀온 꽃다발 원데이 클래스
11. 꽃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땐 어리석게도 꽃선물을 받는 게 별로 기쁘지가 않았다. 꽃을 즐길만한 삶의 여유가 없는 나란 사람이 꽃다발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때 내게는 며칠 만에 사그라질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훨씬 더 원했다.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 작은 작은 아뜰리에에서 일했을 때 그 회사는 꽃 장식도 같이 하는 회사였다. 대표님은 종종 기분 좋으면 꽃을 사 와서 사무실을 장식했고, 나도 가끔은 현장에 꽃을 꾸미는 일에 동원돼서 가기도 했었다. 나는 비전문가라 조화 작업을 주로 했지만 가끔 생화를 만질 기회가 있으면 살아있는 자연이 주는 힘을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남는 꽃을 집으로 가져와 꽃향기를 맡으며 꽃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꽃 선물을 받을 일이 전혀 없다. 물론 지금도 꽃을 구매하는 것은 스스로도 사치스러운 생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입에서 즐거운 것을 몸으로 밀어 넣는 폭식보다 꽃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2년 정도 플라워클래스를 고민했었는데 이번 봄에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스카프를 만지는 일도 그렇고 나는 확실히 촉감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완성된 꽃다발을 사는 것이 아니라 꽃을 만지는 행위에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수분감을 가득 담은 싱그럽고 촉촉한 잎과 줄기를 정리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직업적 특성상 내 손에서 나간 결과물을 다른 사람들 손에서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 예상과 기대감과 다른 모습에 화가 나는 때도 더러 있다. 만족할 수 없는 내 직업적 완성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홀로 하나하나 꽃을 만지면서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 행위를 즐거워하는 큰 이유인 것 같다. 잘 만들고 싶은 욕심과 집착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떻게 만져도 꽃과 자연은 예쁘다. 아직까지는 결과물 자체보다 꽃을 컨디셔닝 하고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그 시간들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다.
낭만 없는 일상 속에서 꽃을 만지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웠던자연의 향기를 맡고, 가끔은 꽃을 나누는 일이 기쁘다. 응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건네는 꽃 선물을 내 손으로 좀 더 예쁘게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