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라는 감정에 집중해 본다. 우리는 좋아하는 게 많다고 해도 생각보다 '좋은 기분'을 일상에서 자주 느끼지는 못한다. 언젠가부터 내 하루의 목표는 '오늘도 즐겁게'가 아닌 '오늘은 무사히'가 된 지 오래다. 나를 편안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행위에 집중해 보자는 의미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출처. Google
17. 바람이 차가워지면 샤브샤브 먹는 것을 좋아한다.
어제 서울에 첫눈이 아주 폭설로 내렸다. 샤브샤브가 절로 떠오르는 추운 계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하루를 한참 시작하고 나서야 얼굴을 뒤늦게 보여주는 해님이 높게 뜨지도 않고 금세 사라진다. 해님의 따스함을 하루에 별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퇴근할 때는 또 어느새 달님만 남아 어둡고 추운 밤바람이 내 피부를 에인다.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먹고 싶은 것들이 막 변하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책상다리 빼고 다 먹는 애' 별명을 가진 나로서는 메뉴 선정을 하는 것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만큼이나 어려운 선택이다. 그런 내게도 최애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샤브샤브!
맑은 육수에 불을 붙이고 야채와 버섯을 잔뜩 넣어준다. 배추를 가장 많이 먹는 방법, 그것은 바로 샤브샤브! 고기는 배고픈 초반에는 하나씩 해먹을 시간이 없다. 국물에도 고기육수가 들어가야 더 맛이 좋으니 야채와 버섯이 익었다 싶으면 고기를 왕창 집어넣고 야채, 버섯, 고기를 건져 소스에 찍어 먹는다. 익히는 동안 점점 침이 고이고 허기가 진 나는 야채, 고기, 버섯을 잔뜩 건져 식혀 소스에 찍어 식혀서 먹기 시작한다. 2차로 야채와 버섯을 투하하고는 이제 불을 좀 줄여놓고 마음 편하게 원래 속도대로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입안에 따뜻하고 촉촉한 야채들과 담백하고 고소한 고기가 계속된 식사에도 질리지가 않는다. 천천히 대화하면서 먹다보면 먹는 속도보다 육수가 졸아붇는게 더 빠르다. 짠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육수와 물도 좀 더 넣어 칼국수를 넣는다. 칼국수는 대체 왜 이렇게 조금 주는 걸까. 사실 나는 선택할 수 있다면 죽 말고 칼국수를 두 번 먹고 싶다. 통통 불은 칼국수를 호로록 먹은 뒤에도 끝나진 않는다. 죽을 포기할 쏘냐. 내 몫은 먹어야지 먹어야지. 소화가 잘 되는 편안한 음식이어서 천만다행이지 잔뜩 위를 불려놓는 것 자체에는 부담이 있지만 죽까지 코스를 마무리 짓고 나면 포만감과 함께 뿌듯한 생각이 든다. 만족스럽게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는 오늘 하루 행복하다!
이번 주말은 집에서 따끈한 샤브샤브 먹으면서 편안하게 보내야지. 다음 해 여름이 오기 전까지 마음껏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