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살고 싶다.
1992년, 2016년의 기억
8년 전 겨울은 이보다 조금 앞선 겨울 초입의 11월이었다. 그때는 앞선 사건에서 고 백남기님의 죽음이 있었으므로 훨씬 조심스럽고 흥분하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분위기였다. 지금 같은 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역시도 공감과 동질감의 따스한 분위기가 있었다. 미취학의 아이를 데려와 같이 촛불을 들었던 가족이 옆에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각자 조금씩 가지고 있던 간식을 나눠먹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나는 그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동체의 연대를 분명하고도 강하게 뜨겁게 느꼈었다.
그런데 8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보다 나아졌느냐고 물으면 해외에서 보는 이미지는 성장하였을지 모르지만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었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8년 전 국민들은 이런 세상이 다시 오지 않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때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계엄이라는 상황을 마주하고 나서야 상기되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 92년이었던 것 같다. 7살의 나는 수술 때문에 정기적으로 세브란스를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어느 날 연대생들이 노태우 정권을 비난하는 데모현장을 목격했다. 연대 정문 앞이 훤히 보이는 버스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꽤 오랜 시간 갇혀있었다. 꽹과리 소리가 귀를 찌르고 쏟아지는 함성과 최루탄 가스가 보였다. 그러고 몇 년 뒤 전두환과 노태우가 내란죄와 비자금 조성으로 구속, 판결받았으니 내가 봤던 대학생들의 항쟁은 그와 관련된 그들의 부당함에 대항하는 지속된 외침이었을 것이다.
1992년 이후에 2016년까지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겪으면서도 놀랍다. IMF를 고통스럽게 겪으면서 폐단도 생겼지만 국민들의 힘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또한 2016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세계로 발을 뻗는 시대가 오고 있었다. 그랬는데 벌어지는 일들은 92년보다 더 이전으로 퇴보하고 있다.
92년에 7살이었던 아이는 2024년 마흔이 코 앞이다. 자꾸 눈물이 난다. 어릴 때 겪은 IMF의 고통이 코앞으로 온 것 같은 불안한 경제상황에 더해 정부는 독재로 회귀하려 한다.
2016년 겨울, 꼬물거리는 손으로 간식을 받았던 그 아이는 지금 2024년의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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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서 박 전 대통령의 정치와 탄핵을 누구보다 더 잘 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한 사람. 그리고 탄핵을 겪어놓고 무엇을 잘 못했는지 반면교사 삼지 않고 탄핵 트라우마를 읊는 정치인들. 나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통이 터질 뿐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판결문을 읽어보면 지금 상황에 탄핵을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검찰이며 헌재며 그 누구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 돌아보라.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발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았다면 이제와서라도 깨닫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혜를 키우면 된다. 투표를 행사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를 선택한 것을 그들의 과오로 탓하거나 분노하거나 할 것 없이 앞으로의 일을 도모해 보자. 그때의 탄핵 반대한 의원들이 지금도 또 똑같은 행위를 하는 것에 분노하고 다시는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정치공학적으로 권력을 탐하는 그들에게 사회의 정의를 보여주면 된다. 그다음도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다음의 희망과 기대를 갖기 이전의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연대(solidarity)이다. 우리 사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성장하듯 어른도 사회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사회의 땅에 딛고 서있기를 바라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