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최근에 아바타 1편을 봤다. 개봉 당시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볼 타이밍을 놓치고 전역 후에는 그런 대작을 집에서 보고 싶지 않아서 기회만 노리다가 결국 13년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에 2편이 개봉했고 부리나케 1편을 봤다. 집에서...
이번에 나온 2편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같은 시간이 흐르면 50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시간은 이전의 13년보다 더 빠르게 흐를 것이라는 걸 충분히 알만한 나이가 됐다.
삼십 대 후반은 인생의 특이점인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때 또래 대부분이 '대학은 가야지'라는 생각을 품었듯 20대 후반에는 대부분 좋은 회사 취업을 목표로 함께 달렸고 30대 초까진 각기 회사는 다를지 몰라도 비슷한 수준의 '직급'을 갖고 사회적으로도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공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나기 전엔 몰랐는데 돌아보니 '30대 초중반'에 큰 분기점이 있었나 보다. 비슷한 사무직일을 하는 것 같았던 같은 나이대 회사원들도 이제는 업계, 직무 등에 따라 하는 업무, 전문성 등이 천지차이이고 사업을 하는 동나이대 주변인들도 꽤 많아졌다. 현재 서 있는 시점에 도달하고 보니 다들 서로 꽤나 다른 길을 걷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다시 공통점을 찾자면 삶은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다는 점 정도..? 물론 난놈도 있고 운이 좋은 것 같은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그래봐야 결과적으로는 뭐 내 집 장만 좀 빨리한 정도고 인생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저는 아직 제 집 없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확실한 건 20대 때만큼 행복해 보이는 또래를 찾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까지의 내 세계관에 따르면 나이들수록 점점 삶이 팍팍해져 가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단조로움'이다. "어차피 아는 맛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딱 삼십 대 중반쯤 되면 정말 새로울 게 거의 없다. 가끔 새로워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새로움을 가장한 비슷한 것들이고 이런 게 신선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익숙함에 둘러싸여 삶이 점점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플러스 기운을 받을만한 경험을 갖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이 단조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엄격함'이다. 태어나서 아바타를 볼 기회를 6~7번 정도 놓치면 누구에게나 떠날 날이 온다. 한 생을 살면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 정점에 오르고 싶은데 동시에 초밥 장인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기회비용처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두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일 텐데 이때, 회사 임원과 초밥 장인이 서로의 일과 고충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임원은 숫자를 기준으로 장인을 판단하려 할 것이고 장인은 디테일을 기준으로 임원을 판단하려 하는 등 삶의 렌즈가 꽤 다를 것이다. 각각 자신의 세계관으로 상대의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30대 후반이면 이제 무엇을 했어도 거의 10년은 했을 나이가 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점점 '자신의 삶'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가고 그만큼 엄격한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팍팍한 것은.. 타인의 삶을 대할 때도 '엄격히' 자신의 삶을 기준으로 전문가 행세를 하려 하며 타인의 세계를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그냥 궁금하다. 불혹을 넘으면 더 견고해진 자신의 세계관으로 타인을 바라볼지 아니면 다시 역지사지의 마음을 찾아갈지.. 예상은 가지만 그 나이가 되어 봐야 알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삶의 행복은 U자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중년의 위기라는 게 있으니 아마도 가장 바닥은 50살 정도일 것 같고, 그 뒤로 다시 반등한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걸 보면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정말 다시 애가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