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상인 Nov 24. 2021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자애(自愛)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자.

가끔씩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물론 100% 내 자의로 만나는 건 아니지만. 살다 보면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야 안 만날 수는 없다. 처음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무조건 수용하고 내가 나쁜 사람이라며 나를 질책도 많이 했다. 그럴 때일수록 그렇게 나를 깍아내리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일순간뿐이다. 다시 나를 깍아내리고 조롱하기 바빴다. 사실 이런 나쁜 굴레 속에서 빠져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또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포에니 전쟁을 통해 타인과의 갈등 속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완승으로 끝났다. 물론 그렇다고 카르타고가 내리 연전연패만을 하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승기를 잡은 로마는 강화조약으로 큰돈을 카르타고에 제시한다. 게다가 원래 10년 동안 분할 납부 조건을 원로원이 거부하여 일시납으로 받기로 했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해상국가이자 상업국가이다. 고로 돈이 차고 넘쳤나 보다. '뭐 그 정도 가지고?' 하며 순순히 돈을 일시납으로 주고 강화조약을 맺었다 한다.


강화조약이야 어쨌건 마지막까지 시칠리아에서 로마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장군이 있었으니 바로 하밀카르다. 우리가 잘 아는 2차 포에니 전쟁의 한니발의 아버지이다. 하밀카르는 카르타고 위원회와 이야기하며, 분통을 터뜨렸는지. 더 이상 본국에서 군사적 기반을 모색하기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세력을 키우러 떠난다. 이때 아들인 한니발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라 청하니 하밀카르는 완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도 조르고 졸라 신전 앞에 아들에게 '로마를 멸망시키겠다'는 맹세를 받고 이베리아 반도로 갔다. 뭐 어느 정도는 쇼였지 않을까? 어쨌든,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에 발을 들인 하밀카르는 여기에 신 카르타고를 세워 스페인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갔다. 사실 로마 입장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강력한 상대를 이기고 나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렇게 세력을 확장시키게 놔둘 수 있을까? 하지만 로마 입장에서도 이래저래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동맹국이기 때문에 내정적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또 북쪽으로는 갈리아인이 호시탐탐 남하를 노리고 있었다. 또 새로운 땅인 시칠리아에 동쪽은 동맹국인 메시나와 시라쿠사가 있는 반면, 서쪽에는 원래 카르타고의 식민지들이었던 곳들이 있다. 이 둘을 똑같은 대우를 해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라 이때부터 '속주'라는 로마만의 특별한 시스템이 등장하게 된다. 동맹국과는 차별화되지만 그렇다고 인간적 권리는 박탈하지 않는 속 주민은 이후로도 로마 역사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와의 전쟁이 다시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축의 축배를 너무 심하게 들어서는 아닐까?

Heinrich Leutemann - Hannibal's Famous Crossing of the Alps

그런 로마가 신 카르타고에 제지를 가할 수 있는 건 에브로 강 이남까지만 허용하고 이북으로 오라 오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을 뿐이다. 에브로 강은 스페인 최북단의 있는 강으로 사실상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준 셈이다. 그렇게 세력을 넓히던 중 하밀카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사위가 그 뒤를 잇다가 그마저도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불세출의 역사적 인물 한니발이 아버지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고모부의 뒤를 이어 신 카르타고를 이끌게 된다. 이 역사적 인물은 그렇게 에브로 강뿐만 아니라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와의 한 판 승부를 내기 위해 이탈리아로 향한다. 물론 혈혈단신은 아니었다. 약 5만 명의 군대와 코끼리 37마리와 함께 했다. 게다가 코끼리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하니. 한니발의 패기가 느껴진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이름을 한니발 전쟁이라고 부를 정도로 로마인들에게 한니발이란 존재는 어마 무시한 존재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렇게 한니발에게 로마가 크게 타격을 입은 이유는 이런 준비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로마라고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0여 년 전 5,000원권의 주인공 율곡 이이는 선조에게 군을 양성해야 할 시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못해도 10만 명의 군이 있어야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가 바로 이이의 십만 양병설이다. 이도 선조가 죽고 난 뒤에 쓰인 선조 수정 실록에서만 쓰여있다 하여 팩트 논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 한다. 어쨌든 당시 조선은 건국이래 약 150여 년간 전쟁 없는 평화로운 기간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넋을 놓고 있었다 한다.


결국 그 대가는 처참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보름 만에 진격한 일본군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조총이라는 신문물이 개입된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부산에서 서울까지 보름 만에 진격했다는 건 중간에 우리 군이 없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립장군과 격돌한 거 외에는 그저 한양행 행군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평생 전쟁만 한 로마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고전하게 되는 이유가 다분히 군을 양성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반대로 한니발은 로마를 무찌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겠는가? 얼마나 준비를 했으면 코끼리를 데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으니 말이다.


역사야 지나간 이야기이고.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겐 근심이란 없다. 로마는 로마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카르타고는 카르타고대로 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준비라는 건 명확한 목적이 부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카르타고의 목적이 로마였다면 로마의 목적은 내정을 탄탄하게 였다.


결국 전쟁이 목적이었던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전투를 여유 있게 당당하게 맞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나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거나 여유가 없다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는 아닐까?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엇인가를 마주할 준비 말이다.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을 준비. 나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으로부터 깎여 내리지 않을 준비. 나를 무시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준비. 등등 우리도 우리 개인으로서 우리 자신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당당하게 지켜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럼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 나를 보호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나는 그 본질적인 부분만 이야기해보자면, 바로 자애(自愛)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것. 나 자신을 내가 사랑하면, 마치 내가 사랑하는 이성을 보호할 때처럼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어렵지 않다. 이성을 사랑할 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물론 이도 정답은 없다. 이성을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어떻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가지이겠는가? 좋아하는 이성과 연인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관심'이라는  필요하다. ,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해하고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  좋아하니?' ' 싫어해?' '너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해?' '  , 행복해?'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어?'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결국, 우리 개개인에게 무환(無患) 가져다줄 준비물이 있다면, 그건 Love myself.


혹시 지금 내가 자존감이 낮다거나.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혹은 타인으로부터 심히 상처를 받고 있다면?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대단한 사람들만이 아는 질문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