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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Jan 18. 2024

부산의 겨울은 얼마나 따뜻할까

 겨울, 처음 부산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었다. 해운대 근처 숙소에 짐을 풀고 바다를 향해 걷고 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길가 펍의 주인이 거리에 야외 테이블을 꺼내 놓고 있는 것이었다. 난 이 겨울에 누가 야외에서 먹는다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나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 야외 테이블에 앉아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것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서. 그건 우리에게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제주도 이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물론 일기예보에 나타나는 최고 기온은 제주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4년을 살아본 우리는 안다. 제주도의 겨울은 대체로 흐리다. 푸른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이 나지막하게 깔려있다. 그건 마치 층고 낮은 다락방에서 지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제주 특유의 강한 바람. 제주의 겨울은 몸이 움츠러들 만큼 찬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겨울만 되면 집안에 틀여 박혀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지냈다. 부산에 이사 오고 나서는 겨울이 괜히 기다려졌다. 겨울에도 아침이면 달리기를 하고, 저녁을 먹고 산책하는 일상의 루틴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부산의 날씨. 흐뭇하군.


 부산의 겨울은 얼마나 따뜻할까. 우선, 해가 잘 드는 우리 집 거실은 낮에 26도까지 올라간다. 보일러를 꺼두는 작은 방도 22도 정도는 늘 유지한다. 그럼, 집 밖은 어떨까. 바람이 많이 부는 편이긴 하지만 맑은 날이면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 덕분에 춥지 않다. 체감상 영상의 흐린 날 보다, 영하의 맑은 날이 더 따뜻한 것 같다. 사실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그리 많지는 않다. 수도권에서는 없이 살 수 없었던 두꺼운 패딩을 드레스룸 깊숙이 넣어두고, 대신 코트를 꺼냈다. 산지 5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한 다섯 번은 입었을까 싶은 옷이다. 이곳의 겨울은 코트나 가벼운 숏패딩이 더 어울린다.  


 우리는 광안리 바다에서부터 수영강을 따라 영화의 전당까지 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겨울에도 이 산책을 계속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나의 행복은 이렇게 소소하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맛있을 때. 무거운 문을 잡아주며 가벼운 미소를 보이는 친절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와 손을 잡고 걸을 때. 그럴 때면 이 행복한 기분을 표현하고 싶어 진다. 특히 비평을 즐기는 그에게는 더 그렇다.

  “춥지 않게 산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행복하다 그지?”

  “추운데?”

 아주 배가 불렀다. 난 수도권에서 살던 때를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두꺼운 겨울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둘러도 추워서 종종거리다 금세 집으로 들어가던 그때를.


 어제는 작은 방에서 피아노를 치던 그가 살그머니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방해가 될지 모르니 보통은 문을 닫고 치는데. 혹시 꼭 닫지 않아 열린 건가 싶어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닫아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리더니 피아노 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방으로 들어가 보니. 세상에, 그가 창문을 활짝 열고, 겉옷을 벗고, 반팔 티셔츠만 입은 채 피아노를 치고 있는 게 아닌가. 거세게 들어오는 바람이 문을 열었나 보다.  

  “너무 더워서 열어놨어. “

  “이 겨울에! 아주 배가 불렀네. 불렀어”


광안해변공원의 가을 국화와 겨울 청보리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창 밖을 보고 있으면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이 다른 계절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태양의 위치다. 이곳 광안리 바다는 남동향이다. 그건 겨울이면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전에 살던 집도 남동향이라 겨울이면 창 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는 했는데. 이사 온 집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주소에 ‘광’ 자가 들어간다. 별것 아닌 우연을 찾아내어 괜히 기쁘다. 부산 다음에 살아볼 곳도 주소에 ‘광’ 자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늘 고역이었다. 겨울은 특히나 그랬다. 이불밖을 나서기가 얼마나 두렵던지. 요즘은 아침이 기다려진다. 구름의 높이와 분포에 따라 달라지는 아침노을을 볼 생각에 설렌다. 아직까지 바다 위로 바로 떠오르는 태양은 보지 못했다. 해가 뜨기 전에는 바다 위로 구름이 깔렸고, 해가 뜨고 나서야 구름이 걷혔다.


 아직 하늘이 어두운 7시. 바다 위로 불그스름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요가 매트를 꺼내어 아침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고 모카포트를 꺼낸다. 커피를 채운 모카포트를 가스레인지에 올린 후 태양경배자세와 팔 굽혀 펴기를 다섯 개 정도 한다. 보글보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남은 커피가 추출되길 기다리며 창 밖을 바라본다. 바다 위 구름이 붉어지고 하얀 구름의 끝자락이 붉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제 태양이 떠오른다.


구름이 짙어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구름이 아닌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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