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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Apr 18. 2024

수영을 배우는 일

 마흔이 훌쩍 넘도록 나는 수영을 배우지 못했다. 자전거를 배우는 일만큼이나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다. 물놀이는 좋아하지만 물은 무섭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여름방학을 간절히 기다렸다. 외갓집으로 가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외갓집 주변으로는 맑은 강물이 흘렀다. 어린 걸음으로도 5분만 걸으면 될 만큼 가까웠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후후 불어서 빵빵하게 공기를 채운 튜브를 허리에 끼고, 분홍색 땡땡이 무늬 수영복을 입고서 사촌들과 함께 강가로 뛰어 나갔다. 튜브 위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며 물에 동동 떠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늘 발이 닿는 깊이의 강에서만 놀았다. 그러다 딱 한번 깊은 웅덩이로 들어갔다. 발이 닿지 않아 불안하기도 했지만, 사촌들과 함께 있으니 괜찮았다. 그때 언니가 나의 튜브를 뺏어갔다. 분명 장난이었겠지만 수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눈앞은 깜깜했고 내 손과 발은 말을 듣지 않았다. 가장 겁이 났던 건 숨을 쉴 수 없었다는 거다. 숨을 쉬지 못해 답답했던 기억. 그건 엄청난 공포였다. 그 이후 난 수영을 배울 수 없었다. 물놀이까지 싫어진 건 아니고, 물속에 머리를 넣는 일이 무서웠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쉬는 게 뭐 그리 복잡한 일이라고, 나는 그걸 반대로 했다.


 휴양지로 여행을 가면 보통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 묵게 된다. 그럼 나는 수영장 바닥을 걸어 다니며 놀았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그가 숨을 쉬면서 물 위에 누워 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물 위에 뜨는 감각을 익히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하지만 영법을 배우지 않고 오래 떠있기는 힘들어서. 그가 옆에 있을 때만 잠깐식 물에 뜰 수 있었다. 모든 수영장에 발이 닿는 건 아니었다. 그럼 유아풀에서 놀거나 튜브를 빌려야 했다. 나 때문에 그도 물놀이를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 수영을 꼭 배워야겠다 생각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와 함께 제대로 물놀이를 하기 위해서!  


호주 케언즈의 에스플러네이드 라군. 이 좋은 수영장에서 나는 걸어다니기만 했다


 부산에 내려와서 그 어렵다는 국민체육센터 수영장 등록에 성공해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발차기까지는 괜찮았다. 킥판을 잡고 고개를 위아래로 숙이며 음파음파. 드디어 물속에서 숨 쉬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렇게 3주쯤 지났을 때 다음 진도를 나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숨쉬기였다. 위아래로 들던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렸을 뿐인데 천지 차이였다. 몸이 가라앉아서 숨을 쉴 때 물을 먹기 일쑤였다. 뭐 좋은 물이라고, 염소 표백된 물을 꼴깍꼴깍 삼켜버렸다.


 하다 보니 어찌어찌 늘기는 해서 킥판을 잡고 수영을 하는 일에는 익숙해졌다. 빨리 킥판과 이별하고만 싶었다. 처음으로 킥판을 때고 자유형을 하던 날이 생각난다. 킥판만 없으면 가볍게 물을 가르며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면에 손을 띄워 중심을 잡는 일이 어려웠다. 나의 두 팔은 물속에서 풍차를 돌리는 것 마냥 뱅글뱅글 돌았다. 의도하지 않게 빠른 속도로 풍차를 돌려대니 금방 지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면 평소와 달리 낮잠이 쏟아졌다. 킥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어느덧 수영 6개월 차가 되었다. 자유형과 배영은 그럭저럭 하고. 평영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돈다. 평영을 하는 나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 같아 보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 물속에서 숨 쉴 줄도 알고,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도 않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다.


비온 뒤 광안대교가 제일 멋지게 보이는 위치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니 그다음 단계로도 나아가고 싶어졌다. 일명 리조트 수영. 헤드업 평영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수영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허우적거리지 않고 아름다운 접영을 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접영을 배우는 것 말고도 꾸준히 수영을 하고 싶은 이유도 생겼다.


 나는 출근하다시피 수영을 다닌다. 주 5일 수업이라 그런 것 같다. 내일은 뭘 입을까 고민하는 것도. 비가 오면 가기 싫어지는 것도. 그래도 겨우겨우 일어나 수영복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서는 것도 딱 그런 기분이 들게 한다.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생긴다는 것.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 너무 자유로운 것보다 적당한 틀에 맞추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전에는 카페나 도서관을 그런 마음으로 다녔는데, 수영은 돈이 아깝다는 약간의 강제성이 더해졌다.  


 각자도생을 위해 바등거리는 직장인들이 가득한 곳에서 살았었다. 나 살기가 바빠 주변의 어려움을 돌아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부산에서 수영장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손길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끙끙거리며 수영복을 입고 있으면 어디선가 나타난 손이 수영복 끈을 올려준다거나. 손을 뒤로 돌려 비누칠을 하고 있으면 등을 밀어준다거나 하는 것.


 지금은 더없이 따숩다는 생각을 한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수영을 하고 나와 바들바들 떨고 있으면, 샤워장 빈자리를 찾아서 알려주는 사람들. 공용 드라이기를 찾아 두리번거리면 어떻게 알아챘는지 여기 드라이기 있어요, 하며 다 쓴 드라이기를 건네주기도 한다.


 한 번은 “드라이기 먼저 써요.”라고 말해주는 이를 만났다. 그분은 머리를 말리기 전 로션을 바르고, 수영 용품 정리를 먼저 하려는 듯 보였다. 나는 그녀가 준비를 끝내기 전까지 대충 머리를 말리고는 드라이기를 돌려주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나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괜찮아. 더 말려. 쓸 만큼 편히 쓰고 담에 다른 사람들 한테도 그렇게 하면 돼요.”


 이제 나는 머리를 말리면서 주변을 살핀다. 나처럼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없는지를. 먼저 드라이기 쓰세요,라고 말할 수 있기를.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가. 그렇게 느낀 따스함이 널리 널리 퍼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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